연례기획전 - 상관없는 기술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라.”

상관없는 기술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라.”

활판인쇄술의 발명은 인류역사상 정보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정보기술의 지속적인 진화는 소위 구텐베르크혁명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정보소통의 속도와 질을 변화시켰다. 오늘날 정보는 지식의 토대를 넘어서 프로그램으로 처리되는 정보알고리즘으로 나아갔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정보는 공유하기가 용이해졌다. 이것은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됐기 때문이다. 동시에 합리적 추론에 기초한 문자언어는 자의반 타의반 감성에 호소하는 이미지에 권좌를 물려주게 되었다.

정보의 빅뱅과 발 빠른 네트워크가 득이 된 것만은 아니다. 기술의 개입 혹은 방관은 오히려 예기치 못한 잡음과 오류를 낳기도 하였다. 요컨대 정보의 바다는 근거 없는 소문과 악플의 원산지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우성 인자를 교배하려 했지만 퇴행적 돌연변이가 태어나 버린 악몽 같은 현실이 펼쳐졌다. 결국 현대인들은 정보소통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눈앞에 가파르게 펼쳐진 가상 세계에 빠져 자신은 물론 상황의 통제력을 상실한 채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이번 기획전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오늘날 네트워크사회가 낳은 해킹이라는 기술현상을 이용하여 가상이 현실을 잠식해 버린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가상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교란과 침입의 다양한 해킹현상 또는 활동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그대로 일어나기도 한다. 정보의 오류로 인해 탄생한 기술은 가상과 현실의 완벽한 매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적 소통을 향한 기술의 발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낳았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기술에 기대어야 하는 현대인의 미망迷妄을 이번 기획전에서 짚어보려 한다.

전시는 구체적으로 참여 작가인 류한길과 한계륜이 서로 상대방의 작업을 해킹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해커들이 정보를 훔치거나 교란하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상대방의 작업 정보를 해킹하기 위해 네트워커라는 연결망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네트워커란 인간 네트워크 속에서 작가에게 정보를 연결해 주는 사람을 뜻한다. 네트워커는 자신과 팀을 이룬 작가의 정보를 상대방 네트워커에게 넘겨주고, 정보를 받은 상대방 네트워커는 자신과 팀을 이룬 작가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해킹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술도 남겨서는 안 되며, 혼란을 주는 정보만을 남겨놓으려 한다.

네트워커와 작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과연 비공식적 연결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네트워크 세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을 찾고자, 우리는 끝나지 않는 게임을 기대해 본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할 수 없고, 어떻게 닿게 될지 알 수 없는 가상공간에서, “기술은 인간을 확장시킨다”는 맥루한의 명제를 다시금 되새겨 보자.

 

상관없는 기술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라.” 다섯가지 법칙

법칙#1. 어떤 친구가 당신에게 선물한 소스를 당신의 컴퓨터에서 실행시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법칙#2. 만약 당신이 어떤 친구가 선물한 소스를 사용했다면 당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칙#3. 당신이 어떤 친구를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당신 기술의 보안 수준이 달라질 것이다.
법칙#4. 어떤 친구가 진짜 당신의 친구인가?
법칙#5. 너무 많은 진실은 때론 거짓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법칙#6. 기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 참여작가 : 류한길, 한계륜
- 네트워커 : 이윤정, 조현정

 

- 전시기간 : 2007. 01. 29 - 02. 14

- Opening : 2007. 02. 03  PM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