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량 개인전 _ 가만,…

이 전시는 첫 개인전 「문사적 취향―난(蘭)」(1998)과 비슷한 문맥에 놓인다. 거기서 나는 과거 문사들이 자기들 취향에 따라 재구성했던 그 또 하나의 세계를 놓고서, 그 세계에 뿌리박았던 상징적 콘텍스트를 비평 · 전유하는 제스처를 보인 바 있었다. 이를테면 ‘군자’로 칭송받던 난이라는 풀에 덕지덕지 얹혀진 비린내 나는 문사적 상징(文士的 象徵)의 콘텍스트를 걷어내고 맨눈으로 그 생리와 생태를 더듬어보고자 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태도를 좀 더 유연하게 해서, 이른바 전통 서예와 회화가 지녔던 미학적 프레임과 이념의 층위, 그리고 회화적 스타일과 방법론 등을 동시대 삶의 문맥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이 작업을 하는 데에는 과거 창작 방법론 가운데 하나인 ‘방(倣)’을 활용할 터인데, 방은 유럽식으로 말하면 ‘Homage to’와 비슷한 데가 있다. 준거와 해석의 대상에 대한 일종의 경의, 흠모이기도 하고 엉뚱하게 비평의 제스처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동될 임시변통 테크놀로지(Temporary Technology)와 미학적 장치(apparatus)는 이른바 ‘서예’이다(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형이상학적/형이하학적 논쟁의 역사)―언어이기도 하고 이미지이기도 한 것; 언어도 아니고 이미지도 아닌 것;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 척하다가도 어느 순간 미학적 장치일 따름이라고 우기기 즐기는 것; 또 그 반대; 존재 증명인 척하다가 어느 순간 부재 증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너스레 떠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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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퍼러리 테크놀러지라, 이것이 이집에서 올 한 해 벌이는 프로젝트의 주제라고 들었고, 그것을 나는 ‘임시변통 상상력’이라든지 ‘우거(寓居)의 기술’이라고 풀어보는데, 이 동네의 입장에서 나를 보면 ‘우연기생충accidentalparasite’ 쯤 칠 법하다, 전시에 앞서 스무 여러 날을 이 집에서 비실거릴 틈을 준 덕에 가끔 나타나 이 집과 이 동네를 흐느적거리기를 몇 날, 인제사 스멀스멀 사지육신에 가려움증이 인다,

이번 작업은 분명 ‘현대적’ 서예라는 걸 가정해두고서 이리저리 궁리해보는 짓, 또는 놀음이겠다(헌데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까 아니다), 쓰기-그리기-읽기-새기기가 거의 한 순간에 비벼져서 어떤 괴이한 아우라를 갖게 되었던 희한한 놀음이 서예라는 거시기였는데, 요즘 것은 그 중 어디 한두 군데가 결석이다, 그것도 문제이지만, 나는 이 집에서, 쓰기는 어디에 있는가(아니면 글자? 글씨? 문자? 언어? 서예? 현대적 거시기?) 하는 물음을 문제로 삼고서 바람 피우고 있는 셈인데, 이를테면 썼다가(만들었다가/새겼다가) 지우는(허무는/감추는) 몸 씀씀이로다가 그러고서는 그게 어디 있지, 또는 그게 어디 갔지? 하는 투로 되묻는 쪽으로 작업 한 타래를 이루고, 또 다른 작업으로는, 말이 꼴을 얻어 입어 문자가(또는 그림이) 되고 그눔이 권세를 얻어 입고 이른바 의미라는 거시기를 흩뿌리면서 부지런히 한 세상 어지럽히고 다니는 꼴을 나도 배워서 나도 하나의 문자가 되어 이 동네 여기저기에 붙어 한 세월 기생할 요량이다(각종 전단지나 스티커처럼),

그러는 동안에 내가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바는 글을/글씨를 가지고 그저 희희닥거려서는 아니 될 일이니, 반드시 세상 형편을 살피고 범물중생을 섬기는 마음씨를 아울러 가꾸어야 한다는 것, 여기 어느 시골 어른의 졸박한 글씨처럼, 세상이 늘 언어 너머에 있듯이, 대상이 늘 감각에 앞서 계시듯이, 글이나 글씨, 그림이 세상을 어떻게 해보자는 걸로 말고 세상을 맞이하고 문안(問安)하고 섬기는 염치로서나 가하듯이,

 

-전시기간 : 2007. 12. 01 - 12. 22

-Opening : 2007. 12. 01  PM 05:00

-레지던시 : 2007. 11. 05 - 11. 22

-작가 프리젠테이션 : 2007. 12. 08 PM 02:00

-대담 프로그램 : 2007. 12. 08  PM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