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to Nowhere: 김철유+카입 2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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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의 시간, 음악의 촉감
Kayip + 김철유 2인전
Journey to Nowhere

현실과 비현실, 보이는 풍경과 그 이면의 어떤 세계, 모든 것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는 형상들을 공기처럼 사운드가 감싸고 있다. 지상에서 하늘로 또 하늘에서 지상으로 공간을 가득 메우는 존재들과 운동들이 유기체적인 이미지로 시각경험을 흔든다. 다양한 힘이 작동하고 공간과 시간을 연결하고 가득 채우고 있는 비물질적인 것이 물질적으로 감각되는 영적 체험과 유사한 기이한 경험이 가능해진다.

Kayip(카입)은 사운드가 시각화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최근 공감각적 지각과 정서적 체험이 가능한 영상 및 사운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100m, 60m 등 대형 동영상에 사색적인 사운드가 결합된 작업이나 조선 궁궐에 영상 사운드작업을 연출하기도 했다. 카입은 소리를 통하여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그려내는 것에 관심을 둔 작곡가로, 선율보다는 음향 자체의 질감과 색조에 주목하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김철유는 펜 드로잉과 수채화 작업으로 밀도 있는 평면 작업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일련의 작업은 공통적으로 읽혀지는 원형이 존재한다. 그것은 그가 유년기를 보낸 강원도 비무장지대에서 접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그는 삐라나 미사일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로서 아메바, 암모나이트와 같은 원시적 기원의 형태를 사용한다. 또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무한히 뻗어나가며 먼 미래의 풍경 혹은 시간이 무의미한 무중력의 상태를 그려낸다.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20세기 초 큐비스트와 다다이스트들이 등장한 이후 과거의 장르와 형식의 굳건한 체계가 와해되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이거나 어떤 촉발할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시각예술과 여타의 다른 예술을 구분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뉴턴 이후 세계를 이해하던 방식, 시간과 공간의 매우 명쾌한 개념적 구분이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파산한 이후 예술가들의 상상과 활동의 영역은 무한정 확대되었다. 현상계, 세계의 표면과 심오한 법칙과 진리가 작동하는 심층이 뒤엉키며 우리의 의식은 더욱 복잡하고 섬세한 관계들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총체적이며 통합적인 감각과 반성적 성찰이 더욱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술가들의 의식과 표현형식은 더욱 고차원적인 복잡계(Complex system)로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재현하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지난 시기의 변화는 현재를 사는 예술가들에게도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넘어 온다. 이번 카입과 김철유의 협업은 시각적으로 재현된 이미지에 공감각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대표적인 인간의 수용능력을 융합해 새로운 방식의 이미지와 사운드 경험의 맥락을 만든다. 카입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거쳐 시각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런 감각의 창의적 통합이라거나 새로운 감각의 제공에 대한 것은 아니다. 카입의 작업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가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예술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성찰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어(표현형식)와 세계(진리)가 대응한다는 인식과 동시에 말년의 비트겐슈타인이 신비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인식처럼 언어로 대응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더 열린 성찰을 생각하게 된다. 문자나 음성, 행위 등의 언어적 행위와 태도가 세계와 대체로 대응하거나 일치하기는 하지만 사실 빙산의 일각을 떠올리듯 그 이상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진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통찰이 이들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유사한 것이 실상 전혀 다른 것일 수 있고 다른 존재로 보이던 것이 실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일 수 있다. 눈으로 보는 현실이 인간의 세계를 대부분 형성한다고 하지만 막상 눈뜬장님처럼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시각의 실체이기도하다. 보거나 듣거나 촉각하거나, 어쨌든 현재를 구성하는 다양한 감각정보와 그에 대한 반성적 인식은 여전히 신비한 구석이 무궁무진하다.

세계의 창조 또는 빅뱅 이후 세계는 갈수록 거대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또는 그 복잡성이 엉성해지거나 단순해지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창조란 양적인 문제 뿐 아니라 질적인 문제도 함께 동반하기 때문에 세계는 점차 거대해지고 사실 점차 더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예술가들의 작업은 점증하는 복잡성을 재현하거나 언어화하는 것을 향한다.

오늘날 소리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관념으로 전승된 감각과 예술과 경험의 문제는 과거를 벗어나 미지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시기의 수많은 예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가들이 실험하고 모험하고 도전하는 이유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욕망하고 진화하고 있다. 또 그만큼 우리의 정신은 깊고 넓게 확장된다. 그것은 마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그러나 곧 존재하게 될 어떤 장소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낯설고 기이하고 또 역으로 익숙하고 기시감이 드는 곳을 방문하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