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보존 A DYING ART: 이소요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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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보존(原形保存)
이소요 개인전

장르: 다큐멘터리, 시각문화 연구
매체: 기록사진, 에페메라, 텍스트와 인체 표본

작가는 미국의 어느 의학 박물관에서 2012년~13년 객원연구원으로 상주하면서, 1900년대 초반에서 1960년대 사이 의사와 의대생들이 제작한 인체 액침표본(液浸標本)의 복원과 보존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 일에 수반되는 정규 작업 단계들을 꼼꼼하게 기록해 둔 스냅 사진들을 <원형보존>을 통해 공개한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창고 구석에 놓여진 100년 묵은 유리병들,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곰팡이 핀 사람의 심장을 꺼내는 모습, 이것을 깨끗하게 씻고, 지지대를 만들고, 방부 처리를 하고, 새 표본병 속에 가공하고, 종이 명찰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아카이빙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시실에 진열하는 장면들을 통해 유물 복원사가 매일 당면하는 희귀한 장면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준화된 복원 기법을 설명하는 것, 혹은 썩어가는 사체를 깨끗하게 ‘되살리는’ 것이 이 전시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2016년 현재, 인체 표본이 우리 문화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처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 인체 해부 구조와 병리에 대한 과학적 정보의 전형으로써 만들어진 표본들은 이제 구시대의 연구 방법을 보여주는 문화사적 유물로,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유료 관람객을 위한 스펙터클과 의인화의 대상으로 변신하였다.

작가가 경험했던 가난한 유물 관리 현장에는 “어떻게 하면 재단, 후원자, 혹은 학술기관의 연구자가 아닌 ‘일반 관람객(general admission)’의 주머니를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열 수 있는가?”라는 학예사들의 고민이 침울하게 깔려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턴과 학생과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되었고, 살아 숨쉬던 누군가의 몸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고 눈길을 받으면서 도구화되었다.

전시실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이 값싼 구경거리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썩어가고 사라져갈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물로 씻어버릴까? 불에 태울까?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줄까? 아니면 박물관과 함께 서서히 사라질 수 있도록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옳을까?

작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이같은 유물을 다루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고민을 담아, 작가는 전시실 한켠에 어떤 사람의 몸의 일부를 진열하였다. 이것은 표본 관리 과정에서 폐기물로 분류되었던 태아의 복부지방인데, 박물관에서는 하수구에 따라버려도 된다(“You can just pour it down the drain.”)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차마 그 프로토콜을 이행하지 못한 작가는, 이 물질을 지퍼백에 밀봉하여 수 년째 지니고 있다가 새로운 유형의 관람객 앞에 다시 한 번 선보이기로 결정하였다. 기괴한 구경거리로써가 아니라, 그 정체성에 대한 열린 마음과 진지한 고민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