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사각: 김현정 변상환 안경수 전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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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16 ~ 12. 07

모퉁이 풍경들

<우연 사각>30대 작가들이 전통적인 표현의 방식으로 어떤 대상 혹은 장면을 발견하는 순간을 재현하려고 한다. 크고 작은 사각의 경계에 걸쳐있는 무수한 이미지는 작가들이 창작과정에 경험하게 되는 우연한 사건과 관계들을 은유한다. 우연하게 수집한 풍경들은 창작자들이 하나의 세계로 이어가고 있으며, 사각의 형태를 이루며 여러 차원을 관통한다. 우리는 프레임 속에서, 그리고 프레임의 모서리 위를 이러 저리 걷는다.

사각이 구성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회화에서도 전혀 다른 대상과 표현 방식을 다루며, 전통적인 사진 예술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김현정은 노동집약적인 회화로 찰나의 경험을 표현하고, 안경수는 일상과 풍경이 오버랩하면서 자신과의 연관성을 찾아간다. 온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스냅사진처럼 그려내는 전병구와 낙산공원 주변의 돌과 굴뚝에서 사물의 과거를 찾아가는 변상환. 이 네 명의 작가는 익숙하지만 온전히 체험된 적 없는 대상을 만나고 거기에 프레임을 걸쳐 놓는다.

풍경이라는 말은 신선하지 않다. 다소 진부하고, 모호하다. 모든 사물의 역동적인 복잡성과 구체적인 개별성 등이 풍경이 되면 그 역동성과 복잡성과 개별성을 상실하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를 둘러싼 매혹적인 것으로서 풍경은 영감과 믿음을 준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장면들은 창작자와 감상자를 끌어당긴다.

김현정은 주로 그림자 진 골목이나 인적 드문 주차장 등 평범한 장면들을 유화로 섬세하게 다뤄왔다. 곧 기억에서 사라질 순간들을 붙잡기 위해 쏟아 부은 노동을 증명하듯이, 소리가 멈춘 정지화면처럼 고요하다. ‘The Waves(2015)’ 연작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기 힘든 파도를 그리며 이미지에 더욱 집중한다. 높이 솟았다가 순식간에 부서지는 파도의 물결은 모호하지만, 더욱 단단하고 짙은 인상을 풍기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파도의 표면은 깊은 바다가 간직한 고독처럼 다가온다. 세계가 임종하는 순간의 음울한 모습일지 모른다.

안경수는 공공의 장소와 그 곳을 그린 자신의 풍경의 거리를 탐색한다. 공터, 무성한 잡초, 공사장의 가림막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도시의 장소적 특징들은 배제된다. 실제 장소의 사진과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비교하면서 개인으로서의 작가는 어디에 위치를 자문한다. 이렇게 완성된 풍경 연작은 차가운 도시의 모퉁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왜 그리는지 지속적으로 질문하게 만든다. 아크릴 물감으로 반듯하고 매끈하게 처리된 캔버스의 표면은 개인과 풍경(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을 은유한다

전병구의 작업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나 영화에서 얻은 이미지의 일부를 그림으로 옮긴다.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촬영하고, 크롭과 생략을 거쳐 선택하면서 사진의 분위기와 배경에 깔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획득한 이미지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인식하고, 각각의 화면은 사연을 담은 한 편의 영화나 소설의 스틸 컷처럼 보인다. 도구를 거쳐 얻어낸 2차 이미지는 작가와 화면 속의 인물, 감상자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투박한 붓질과 과감하게 생략한 디테일은 이미지의 숨겨진 상황과 주인공들을 비밀스러운 동경의 대상으로 재현하고, 감상자의 호기심과 상상을 덧입힌다.

변상환의 <낙산돌>, <매일 사진>은 서울의 창신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한 사진 연작이다. 정처 없이 걸으면 사연을 알 수 없는 돌들이 주택가 대문 앞에 뜬금없이 솟는다. 돌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애정을 쏟는다거나, 쉼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피해 낙산의 꼭대기에 올라 굴뚝을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풍경이 아파트와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으로 인식되지만, 그의 사진에는 달동네의 굴뚝보다 높은 빌딩이 흔치않고, 시원한 하늘만 배경으로 남는다. 작가는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쉽게 지나쳤을 대상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도시들이 지닌 혼성적이면서도 특수한 과거의 흔적을 시각언어로 번역한다.

전시장에 놓인 사각들은 독립적이지 않다. 돌과 기둥은 붙어있고, 도시의 철탑과 구름의 모서리가 서로를 지탱한다. 고독한 이미지들이 공존한다. 우연한 만남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함께 느끼고 지켜본 것들을 환기한다. 사각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과 비전을 공유한다.


-아트스페이스 휴 큐레이터 윤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