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거리는 현실: 권세진, 김가연, 오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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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3.08 - 04.04

현대미술의 이미지는 많은 경우 주제와 메시지를 대단히 추상적 또는 복잡한 은유로 표현한다. 사건의 장소 또는 현장방문을 통해 사건의 이면에 있는 정치경제적 또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독해하는 과정이 이 전시의 주제이다. 힘과 에너지가 작동하는 중심장소에서 벌어지는 현상,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들이 만난다.

권세진, 김가연, 오세경 세 명의 작가는 30대 초 중반으로 비슷한 삶의 환경을 겪으며 성장한 세대다. 물질적으로 충만했던 1990년대 한국 문화의 평균적 경험과 IMF위기 이후 밀레니엄의 경험, 스마트폰과 함께 전 세계를 이동할 수 있는 시대의 경험을 은유한다.

권세진의 작업은 어느 날 들추어본 졸업앨범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들은 문을 닫은 학교와 함께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텅 빈 교실에서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들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강렬한 감정을 유발한다. ‘흐려진 풍경(2013-)’ 연작들은 폐교의 모습을 기록한 일상적이 풍경과 ‘학교’라는 장소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집단행동을 기록한 것이다. 제도화된 교육기관에서 익혀야 했던 국민체조, 조회시간의 기억 또는 상장과 부여되는 ‘트로피’연작은 학교라는 시스템이 개인에게 인정하는 권한과 동시에 지켜야만 했던 질서를 상징한다.

권세진이 졸업앨범을 통해 개인의 역사와 기록을 들추어낸다면, 김가연은 적극적으로 사진을 매개체로 사용한다. 인터넷 미디어로부터 얻은 보도사진들은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회화적 표현을 통해 변형된다. 사진이 가진 강력한 묘사의 힘은 작가의 언어로 재해석되면서 ‘사실’과 ‘회화’의 사이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사건(또는 장소)을 관객 앞으로 끌어들인다. 이 <역사화>의 또 다른 버전으로, 작가는 보도사진을 작은 블록안에 그려넣는다. ‘메멘토’ 시리즈는 뉴스로부터 전달받은 사건의 전말을 관객의 손에 쥐어질 수 있는 오브제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그날의 사건과 기억은 하나의 물질로 변형한다.

오세경의 근작 ‘회색온도(2014-2017)’에는 줄곧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등장한다. 그들과 함께 하이에나, 불, 밤의 풍경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화면을 채운다. 위 두 작가가 사진을 매개로 감정과 서사를 이입한다면, 오세경은 여러 대상들에 상징을 부여하고, 조합한다. 갈등과 배신, 동맹과 연민, 이별과 우정 등 내면적인 경험과 감정을 부여하며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한다. 화면 속 대상들은 권력의 강약을 드러내며 개인적인 은유를 내비치는 동시에 보편적인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시사한다. 작가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는 이런 기이하고 냉소적인 풍경에 현실감을 덧입힌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세 작가들은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순간을 재구성하는 동시의 개인의 과거와 경험을 되물어 보편성을 끌어내고 있다. 이는 현실을 비추어 새로운 감각을 유발하는 회화의 역할과 가능성을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