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과 식생: 강정헌, 김지수,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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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 05.08

1 변화

현대미술의 요지경 속에 들어서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회화, 조각, 사진, 휴머니즘과 인생철학, 깊은 소통과 공감이 주는 아름다움 감동의 시대가 지나간 좋았던 시절처럼 보인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공감할 수 없이 죽은 소나무처럼 붉게 죽어가거나 퇴락한 유물처럼 빠르게 유폐되고 있다. 우리는 현대미술의 숲에 들어가 어떤 생각과 시각, 어떤 경험으로 살아갈지 알 수 없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안전하고 편안한 위치에서 감상하고 교감하는 세계가 아니다. 현대미술은 마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숲처럼 낯설고 불안하고 심지어 공포로 가득하다. 숲을 가로지르고 내리비치는 햇빛이나 맑은 물줄기,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에 영롱하게 빛나는 잎과 꽃들, 그리고 무수한 생명체들. 현대미술은 마치 숲처럼 이해된다. 관객은 안전하지 않다. 현대미술은 아름답고 심오한 예술계라는 인생의 완성을 위한 과정으로서 더 이상 안전한 관람과 공감을 제고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은 관객서비스를 위한 장치들을 하나 둘 제거해왔다.

어느 분야나 그렇듯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거나 반대로 과거의 전통과 보수적 미학에 귀의한다. 어떤 태도와 전략을 취하든 이런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이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 전시에 초대한 강정헌, 김지수, 김준, 세 작가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설정하고 경험하며 다양한 차원과 맥락에 기대고 그 속에 거주하여 사색하고 표현한다.

강정헌은 목화 기르기는 방법의 모색과 목화의 일련의 생육과정을 설치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판화지(cotton paper) 재료로 쓰이는 목화를 기르기 위한 다양한 조건을 실험하고 실패와 성공의 과정, 목화의 식생을 둘러싼 경험을 자신의 기존의 전통적인 판화제작과 비교한다. 그가 목화를 재배하게 된 계기는 현대인이 처한 예측할 수 없는 생태계파괴와 그에 따라 빈번하게 발생하는 거대한 재해(災害)의 상황에서 판화를 제작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작업실 안팎에서 목화를 재배하고 그렇게 수확한 목화를 이용하여 판화지를 만든다. 그 판화지에 작품을 찍는 과정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3년 기획 프로젝트이다. 4월에 판화지 위에서 발아시킨 씨앗을 흙에 심어서 재배한다. 일주일 간격으로 발아시킨 목화를 전시하고 전시 기간 동안 전쟁 관련 뉴스에서 나오는 붉은색과 푸른색 빛을 이용하여 식물에게 필요한 가시광선을 공급하고 여러 장치들을 이용하여 실내에서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힘들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예술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 강정헌 작가노트

김지수는 이끼를 설치하여 관객이 관람하는 과정에 고차원적인 정신적 활동과는 별개로 생명체면 반드시 필요한 생명유지활동을 상호작용하도록 설치한다. 이끼는 관객의 호흡에 반응하며 습도와 증기, 조명 등이 변화한다. 식물과 포유류가 호흡을 통해 관계하고 공존할 수 있다. 소리를 듣고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고, 냄새 맡고, 기억할 수 있는 식물의 감각 세계는 삶의 또 다른 ‘신비(mystery)’가 된다. 이러한 다른 생명체와의 교감과 다양한 의사전달 방식의 체험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식물이 감각하는 시간은 식물과 사람과의 깊은 교감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식물의 반응과 소통,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유한한 지구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의 더불어 사는 지속가능한 공존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 김지수 작가노트

김준은 호주의 생태계에서 수집한 다양한 종류의 씨와 열매 등을 근세의 박물학자들처럼 분류하고 보존하며 설명한다. 그의 설치는 몇 만 년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돌며 수렵과 채집으로 생존해온 인류의 생명활동을 떠올린다. 이 인류의 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삶과 존재는 현대인류에 깊은 영감을 준다. 김준의 행위는 이러한 원형적 인류의 생존행동과 패턴을 반복한다. 오지로부터 채집되어 우리 눈앞에 놓인 식물표본들을 보며 우리는 사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말이다. 생물학적 진화와는 별개로 생명성과 영혼의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며 깊은 사색을 요구한다. 작품 제작에 사용된 1차적 아카이브 재료로는 자연폭포(Ebor Fall)에 자생하는 지의류(공생체), 블루마운틴 산림 등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어 채집된 다양한 종의 (유칼리)나무 열매들, 자연 화재(Bush fire)로 발생된 숯, 사암층에서 형성되고 퇴적된 암석들,  그리고 여러 차례의 탐사를 통해 현장에서 수집되고 건조된 호주에 자생하는 식물 등이다. 설치 작품에 울리는 8채널 사운드들은 블루마운틴 지역에서 고음의 규칙적인 벨 소리를 내는 새(Bellbird) 소리, 도리고 국립공원의 울창한 숲의 강한 바람에 부딪혀 나는 나무들의 소리, 거대 사암덩어리가 머금고 있다 떨어트리는 물방울 소리, 아라쿤 국립공원 해안가에 자생하는 다양한 동-식물들의 미세한 소리 등으로 구성되었다. - 김준 작가노트

2 피드백과 식생

현대 미술가들의 관찰과 분석과 해석, 표현과 설치로 구성된 식물과 대화하기, 식물을 사유하기, 식물을 몽상하기다. ‘피드백’은 환경적 원인에 의해 변화된 결과가 다시 원인에 작용하여 상호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생명의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피드백은 우리말로는 ‘되먹임’인데 입력과 출력을 갖춘 시스템에서 입력에 따라 반응하는 출력에 의하여 다시 입력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자동 제어 따위의 전기 회로에 많이 사용된다. 또한 새로운 정보나 경험 등을 학습하는 행동에 대해 가이드가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며 이는 정보제공자와 학습자가 동일인일 경우, 그러니까 예술가가 창작과정에 벌어지는 본인의 행위에 대해 예술가 자신이 반응하는 것을 은유한다. 피드백은 복잡한 네트워크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예술가들의 정신역학을 의미한다.

이런 다양하게 확산되고 미세하고 정교하게 분화하며 접속하고 복잡해지는 피드백의 전 과정이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이 세계는 무기물과 유기물, 동물과 식물, 고등생물과 미생물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함께 정보를 나누고 자극을 주고 반응하고 재반응하는 생명활동의 피드백이 무한반복 된다. 미술과 화이트큐브가 구성해온 예술생태계는 개별자들의 활동과 상관없이 무수한 뿌리와 뿌리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피드백이 작동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관심이 비로소 그에게 돌려지는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지 모른다.

더욱이 과거 인간이 자연을 과학적 분류체계 속에서 하나의 죽어버린 사물인 표본으로 삼아온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떠올릴 수 있다. 인류는 되돌아보면 한편으로는 매우 유능한 학습자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지한 파괴자로서 생태계의 균형자 또는 조율자로서는 낙제생이었다. 이 전시에서는 생태계 속의 식생을 연구하듯 식물을 다루는 세 명의 작가들의 상호관계를 통해 현대미술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시각과 사색과 노동이 상호 교묘하게 조율되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지속하고 미래의 생명활동을 기다릴 수 있게 된다. 세 명의 작가들은 현대미술이 자연과 함께 소통하고 공존하기를 향하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예시한다.

식물 또는 자연, 생태계를 사유하는 작가들의 전시는 지속되어왔다. 이는 하나의 방향을 향해 전진하는 논리의 형식만으로는 존재와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인식과 함께 현대미술이 전통적인 조형예술의 범주를 벗어나 인류사의 거대서사 속에서 개별자로서 개인이 아니라 지구의 공동운명체로서의 인간의 보편적 사유와 실천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개인에 갇히지 않고 개인이되 개인을 벗어난 관계와 공존을 통해 삶과 존재의 문제를 생명체(식물)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개별적 생명과 보편적 환경과의 상호관계가 식물을 통해 환유적으로 드러난다. 세 작가들의 작품은 서로 어울려 호흡(呼吸)과 몸짓이 삼투(滲透)하는 예술의 식생을 이룬다.

- 아트스페이스 휴 운영위원장 김노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