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만들기; 문서들: 조혜진 개인전

8.JPG

2017.05.17 ~ 06.13

조혜진 작가의 작업은 사물에서 기인된다. 사물을 향한 그의 예술적 시도는 현실적인 면을 다루기 위해 가장 최적의 재료를 찾으려는 미적 태도(aesthetic attitude)로 이해된다. 작가의 작업은 일상의 사물을 가리키지만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리서치를 통해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다단의 레이어들을 습득, 파악하고 조사하는 소위 인풋(input)의 태도와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프로젝트 혹은 입체작업으로 보여주는 아웃풋(output)의 과정을 거친다.

《새로 만들기; 문서들》은 도시루(とうしゅろ, 당종려唐棕櫚를 뜻하는 일본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종려나무 모양의 잎을 뜻하기도 한다.)에 대한 다수의 실용신안등록 문서로부터 읽어나감과 동시에 ‘형’태에 초점을 잡고 있는 조각적인 사물읽기를 제안한다. <도시루 아카이브_읽는 형태>는 각각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문서들을 연결시키고, 그 안의 사물을 설명하는 용어와 도면, 실용신안에서 사용된 기술적 아이디어, 형태적 구현물을 드로잉으로 재조명한다. 문서가 새로 생산된 사물의 소유권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도시루 아카이브_읽는 형태>는 법률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수사학을 다시금 조각적 실체로 변환시키고 사물들 간의 관계를 좀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형태와 구조로 포착하여, 사물의 디자인에 대한 연유를 다른 모델로부터 찾아 연결시켜 배치하고 전개한다. 이러한 형태를 기반으로 한 맵핑은 사물들의 위상을 다른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현실공간 속에서 체계화된 인공물의 형태구성에 대한 원인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구로 작동한다.

이러한 배치 속에서 흥미로운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물들 속에서 드러나는 유사한 구조나 형태가 각각의 사물들에 맞게 맥락화 되어 사용되고 있는 점이다. 폐백닭이나 케이크용 나이프, 차량용 손잡이에서 사용되던 구조는 화환용 인조 장식에서 중요한 요소로 적용돼 새로운 고안물이 된다. 이제 사물의 출처에 따라 다양하게 혹은 무한히 의미작용하고 있는 사물의 구조들은 중첩되고 전유되는 무연고의 추상적인 구조 자체로 환원된다. 이 구조는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암시한다. 마치 구조는 기표처럼, 사물은 기의처럼 인식된다. 이러한 작동은 <구조들>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실용신안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구조의 보편화된 인조품이나 균질화된 문서로 세속화되기 이전의 원형의 모습을 재현하여, 구조 자체의 재 읽기를 제안한다. 구조들은 사물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구조물로 좌대 위에 나열된다. 도시루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낯선 구조물들은 의미화 되기 이전의 형을 가리키면서 주변의 사물로 이동할 수 있는 운동성과 여러 사물의 특수 기능으로 구체화되는 다기능성을 함축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크게 문서와 드로잉, 입체작업으로 나뉜다. 사물들이 일상에서 소비되는 형식으로서의 문서, ‘형태’로 재서술되고 다시 읽는 드로잉, 좌대위에서 조각의 무게감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이는 입체작업들간의 배치는 사물로부터 전개되는 여러 개의 함수들이 서로 얽히게끔 한다. 의미가 소거된 구조와 계산된 구조 사이에서 사물의 형태학적인 접근과 사물이 인간과 맺는 관계를 가리킨다.
도시루의 여러 실용신안들은 잎들의 처짐현상, 제조공정의 효율화, 비용 절감, 용이한 운반 취급 등의 개선을 위해 다양하게 등록되었다. 화환은 이제 장인의 손보다는 대량 생산과 효율성에 맞춰 재단되고 제작된다. 오늘날 화환 자체는 축하나 애도보다도 형식적 의례 절차의 일부분이며 의미가 소거된 생산과 소비만의 사물로 보인다. 문서의 여러 도시루들은 지속되는 수요에 최적화된 가성비를 위해 자본주의에 알맞는 사물을 향해 나아간다.

전시공간에서의 문서와 드로잉, 그리고 구조물들은 사물의 혹은 형태의 이유를 쫓는 예술적 시도의 결과이자 증거물의 단초로 작동한다. 사물을 조직하는 것은 사회관계를 반영하는 것이고, 사물은 다시 사회를 재구조화 한다. 사물은 단순히 인간의 기능적인 욕구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욕구들이 뒤얽히고 어긋나면서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맺고 있는 어떤 체계 위에서 존속한다. 작가가 실천하는 사물에 대한 여러 갈래의 접근들은 이에 대한 파헤침이자 지속되는 사물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 아트스페이스 휴 큐레이터 최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