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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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E

김 준 개인전


2020.9.14-9.23

-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몸속의 몸, 이것은 신체가 아니다.

김노암(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

   

1

목과 팔과 다리가 절단된 토르소는 기괴하다. 양팔이 없는 비너스의 아름다움도 본래 변태적이다. 인도의 한 지역에서는 돌연변이와 같은 변형된 신체가 신(神)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손이나 얼굴이 여럿인 신의 모습처럼. 20세기 초 큐비스트들도 인체를 이리저리 자르고 옮겨 붙이며 표현했다. 수많은 B급영화들 속의 미친 의사들이 신체 절단과 신체 접합의 기괴한 방법으로 살아있는 시체들을 창조했다. 식물과 동물과 무기물이 신체와 유기적으로 합성된다. 어떤 일본만화는 미친 범죄자가 사람의 뇌에 꽃을 심기도 한다. 메트릭스 속 인간은 일종의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기 또는 배터리다. 우주 또는 미래의 암울한 세계에서는 인간의 신체가 다양하게 사유되고 사용된다. 머나먼 우주의 어느 세계에서는 인간이 꽃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꽃이 인간에게 물을 주며 키울지도 모른다.

현대의 성형수술도 이러한 신체변형의 살아있는 예이다. 본래의 몸을 인위적으로 깎고 다듬고 붙이며 조작한다. 신체변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관습적 인식과 가상을 해체한다. 몸이 몸이 아닌 것이 된다.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인간 또는 몸이란 한편의 신화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비유되었다. 정신적인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인간의 몸은 과소평가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정신과 영혼을 위해 인간의 몸은 물질이 되고 그릇이 되어야 했다. 영적 가치를 담는 그릇으로서 인간의 몸은 성배(聖杯)일 수도 있지만 신의 아들에게나 해당하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몸은 한편으로는 시커먼 무저갱(無底坑)을 향해 추락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적으로 한없이 상승하는 사건의 장소이다. 그릇이 된 몸은 비극적이다.

작품은 신체 안의 신체가 동물처럼 또는 식물처럼 증식하는 것을 보여준다. 음울하지만 동시에 화려한 조형과 칼라의 귀족적 취향과 어둡고 괴이한 그로테스크함이 복잡하지 않게 결합한다. 단지 이미지일 뿐이지만 김준 작가의 손으로 만들어낸 신체는 인간의 몸을 닮은 어떤 존재일 뿐이다. 인간을 닮았지만 이성이나 오성, 감정이 빠져있는 사물. 예술을 꽃에 비유한다면 조화가 아닌 이상 꽃은 곧 시들고 죽어버린다. 빨리 시들고 빨리 죽어버릴수록 그것이 진짜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다. 인간의 몸이 빠른 노화와 죽음으로 인해 생동하는 몸은 중요한 사건이 된다. 사건은 한 순간 존재했다 사라지니 말이다. 수천년 수만년의 시간 속에서 인간, 인류는 지구에서 벌어졌던 무수한 사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는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가설이자 몽상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건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인간의 신체는 사건의 장소가 되고 사물이 되거나 사물의 일부가 된다.

야만의 시대에 기근이 들거나 전쟁이 벌어지면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을 분류하고 사육하고 잡아먹는 시대는 야만의 시대이다. 몸속의 몸은 몸이 몸을 잡아먹고 있는 약육강식을 은유할지도 모른다. 또는 역사 속 인류의 몸을 저 멀리 기존의 도덕과 윤리가 뒤틀리고 완전히 다른 세계와 차원으로 던져버리는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2

이번 전시는 20여년 이상 지속해온 김준 작가의 문신시리즈가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신과 신체를 넘어서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맥락, 자본주의 세계의 신체 등을 은유하던 작업에서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존재론적 차원에 작가의 몽상이 접촉하고 있다는 징후를 읽을 수 있다.

문신이라는 오래되고 원형적인 문화는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시절 야만의 치부되어 사멸할 뻔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탈구조주의와 다원주의의 등장으로 신체와 관련된 오래되고 고유한 수많은 지역은 문화가 복권되었다. 성리학적 몸의 인식이 지배적인 한국에서는 2000년대 김준 작가를 비롯한 미술가들에 의해 몸의 새로운 이해가 현대미술의 중요한 주제이자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문신은 곧 사멸해버릴 인간의 몸에 영원성을 새기는 것이다. 문신은 의지를 굳게 하고 결기를 세우는 장치이기도 하다. 날카로운 바늘에 염료를 묻혀 인간의 피부에 상처를 내고 한땀 한땀 새기는 문신은 살아있는 피부의 일부를 죽임으로써 형상을 갖게 된다. 문신이란 곧 생명과 죽음의 상관성을 은유한다. 생명의 찬란함이 죽음에 무게를 더해주고 깊고 어두운 죽음이 살아있음을 돋보이게 한다.

김준 작가의 몽상 속에서 사람의 몸은 꽃병이 되고 정물이 된다. 도자기 또는 대리석으로 만든 인체의 절단된 면 사이로 사물들이 담겨 있다. 몸에 몸을 심고 몸을 꽃처럼 피웠다. 작가에게 인간의 신체는 살아 숨쉬는 신체가 아니라 무한히 변화하는 과정의 한 단계에 머물고 있는 사물일 뿐이다. 살아있는 몸과 죽은 몸의 차별이 없다. 생사(生死)가 등가교환을 할 수 있는 세계의 이미지이다. 인간의 몸이 더 높은 차원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면 동일한 차원의 또 다른 몸을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을 담고 있는 몸의 형상은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질문한다.

우리 내면의 심리를 은유하는 그로테스크하며 표현적인 신체 이미지는 매력적이다. 이미지는 초현실적이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는 인간의 몸이 그릇이나 병이 될 수도 있다. 꿈속에서 기이하게 또는 강박적으로 변형된 몸이 역설적으로 현실의 몸을 리얼하게 재현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몸의 몽상. 몸의 수수께끼. 해체되고 재조립된 괴이한 신체들. 이미지는 사람의 몸도 그릇도 아니다. 우리에게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이미지일 뿐이다. 김준 작가의 대표적인 이미지들은 몸을 터부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감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