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MMALAT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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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MMALATTAM

BITNALEE 개인전

 

2020.10.16-11.19
-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소설가 김동인의 소설집 ‘감자’에서 작가는 여주인공의 생애와 내면을 마치 인형처럼 조종할 수 있다고 하여 전지적 작가시점을‘인형 조종술’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소설에서 쓰이는 일종의 창작방법론인데, 본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을 인형화 하여 조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다는 측면이 있다.  인형의 모습을 빌려 인물을 박제시키는 작업은 인물을 일종의 피규어(물건)처럼 만들어 일시적으로 소유욕을 충족시킨다. 헌팅 트로피(hunting trophy)는 사냥의 결과물로서 일종의 전리품(戰利品)의 역할을 하는데, 작가에게 인형 머리와 같은 토르소(torso) 조각들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으로 치환된다. BITNA LEE 작업노트 중

*봄말라탐: 인도 동남부의 타밀나두주 지역에서 공연되는 마리오네트 유형의 복잡하고 연극적인 인형극을 뜻함.

    

 

나의 아름다운
김노암(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

1
34살의 브라질 남자 로드리고 알베스는 150여 차례의 성형수술로 살아있는 켄(Ken)으로 불렸다. 그는 최근에 다시 수술을 해 트랜스젠더로 변신했다. 그러고 보면 켄은 생물학적 남성이 아니라 문화적 성이며 새로운 제 3, 제 4의 성정체성을 가진 존재처럼 보인다. 남자가 아닌 남자를 닮은 성적 판타지의 요구들로 구성된 새로운 성적 존재이다. 자신의 몸을 예쁜 비례로 만들기 위해 운동하고 굶는 것이 하나의 멋진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많은 연예인들과 스포츠맨들, 셀럽들이 몸만들기에 나섰고 학생이나 일반직장인들도 자신의 몸을 가꾸는 것이 삶을 멋지고 충실하게 만드는 괜찮은 선택지가 되었다. 몸만들기는 남녀노소와 직업의 구별이 없다.

BITNA LEE 작가의 이미지들은 이러한 변화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BITNA LEE의 이미지는 배꼽이 없고 젖꼭지가 없는 인형을 닮은 사내들의 몸의 향연이 이어지며 새로운 감각과 인식으로 표현된 남성 또는 남성 피규어의 몸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이미지가 사실은 실제 사람들을 염두한 것은 아니고 인형이나 피규어처럼 연출되는 무엇이라고 말한다. 바비의 친구이 켄처럼 말이다. 오랫동안 북미 소녀들의 판타지를 채웠던 이 매력적인 남자친구의 모델은 자기애가 강하고 다소 양성애적인 표현도 거침없이 즐기는 유쾌한 청년이다. 사회성 높은 이런 친구를 굳이 애인이 아니어도 남자사람친구로 만나고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덜 우울할지도 모른다. 한편 바비의 남자친구 켄은 일종의 말장난 같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으면 언제든 사서 따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보관하는 그 캔(Can)처럼 말이다. 20세기의 소녀들의 성적 판타지로 잘 조리된 무언가를 담은 캔인 셈이다. 총각파티를 떠올리는 수영복 또는 속옷차림의 사내들이 한껏 젊고 탄탄한 몸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사내들의 단체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 미디어를 통해 외국인 모델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사용하는 대중문화가 익숙해진 시절이다. BITNA LEE의 이미지들은 국적을 알 수 없는 사내들의 성적매력이 넘치는 근육과 체형과 신체비례의 향연으로 구성된다. 말 그대로 멋진 사내들이 비처럼 하늘에서 내려올 것 같다.


2
한국사회는 전통과 현대, 관습과 혁신이 혼합된 사회이다. 사람의 몸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관념은 유달리 복잡하고 드라마틱하다. 여전히 포탈사이트에서 키스씬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진지하게 반복해서 등장한다. 영화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은 20세기 영화사를 장식했던 많은 키스씬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그냥 배우들의 연기이고 이야기의 필요한 장면이며, 우리의 생활의 한 부분을 훔쳐보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키스신이 기묘한 열기로 다뤄진다.

몸과 관련된 문화와 예술, 일상의 감각은 신비적인 영역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몸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주 작은 이해만을 가진 채 보낼 것이다. 물론 우리 자신의 몸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와 타자, 세계, 우주 등등. 우리는 거의 무지 속에 평생을 보낸다. 우리가 길러내는 감각은 이 무지의 상태를 요령껏 또는 지혜롭게 견디고 버티는 감각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면서 느낀 척하고 아는 척한다. 등신대 크기의 인형은 더 이상 유아기나 아동기의 장난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성적 판타지와 관련된 대상이 되며 일종의 욕망의 대상과 관련된 어떤 것이 된다.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은 최종국면이 소비와 사용 단계에 이르러 무수한 독립적인 의미로 작동한다. 이미지와 욕망은 조절이나 관리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옆문이나 뒷문이 존재한다. 지배적인 문화의 학습 전에 몸에 새겨진 본성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본질 또는 본성이 없다거나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본성이 변할 수 있다면 신체에 대한 우리의 감각, 우리의 인식은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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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손
김창영 박광선 윤상윤


2020.9.25-10.8
-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예비전속작가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창영, 박광선, 윤상윤 작가의 기획전이다. ‘예비 전속작가제 지원’은 전업 미술 작가들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전속작가를 운영하기 어려운 중소 화랑 및 비영리전시공간에 작가를 발굴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김창영의 작업은 캔버스의 밑바탕을 칠하는 백칠로부터 시작된다. 백칠은 본래 물감의 발색을 좋게 하기 위한 과정이나, 김창영의 작업에서는 그 작용이 반대로 적용된다. 백칠이 마르면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화면 전체를 곱게 간다. 그리고 다시 백칠을 하고 말리고 그라인더로 가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지나면 캔버스의 표면은 백자나 실크의 그것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워지는데 이때 작가는 비로소 색을 올리기 시작한다. 대도시 빌딩숲의 곧은 직선과 작가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낮고 부드러운 산과 강의 곡선이 만난다. 작가의 기억 속 상이한 시간과 공간의 경험이 한 화면에서 충돌한다. 어떠한 내러티브도 유추할 수 없는 오직 색채뿐인 화면 안에서 그의 멀어짐과 가까움, 짙고 옅음, 선들의 운동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마주한 풍경과 심상에 도달하게 된다.
박광선은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들 때 사용되는 합판을 다룬다. 주재료가 아닌 보조 재료로서 필요에 의해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합판은 매끄러운 캔버스 대신 작가의 굴곡진 경험과 정서를 담아내기에 합당한 재료였다. 합판 주변을 손으로 힘겹게 잡아떼어 투박한 질감을 그대로 노출하는데 거리를 두고 보면 마치 고의적으로 화면을 벗어난 능숙한 화가의 거친 붓칠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붓 끝이 아닌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매혹적인 마티에르다. 합판은 캔버스와는 다르게 물감의 색을 흡수하고 합판 자체가 갖는 나무색으로 인해 마치 빛바랜 오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주변 지인의 초상을 합판에 그리거나, 지인이 직접 사용했던 사물-거울-과 콜라주하여 개인의 경험과 역사를 기억하고 애도한다. 작가는 주변 지인의 죽음을 계기로 관계의 생성과 소멸, 생명의 순환과 자연 순응적인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윤상윤은 이드(id)-자아-초자아로 화면을 구분하는 오른손 회화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그린 드로잉을 선보인다. 작가는 기존에 화면을 3단으로 분리하여 개인의 성격을 구분하는 요소를 분석하거나 개인과 집단 혹은 집단 이기심 등을 다루는데, 왼손 드로잉은 작가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관심사들을 자연스럽게 화면으로 불러온다. 왼손 드로잉은 단순히 기술이나 기법상의 미숙함뿐만 아니라 작가의 무의식을 자극하여 비이성, 비논리적 사유와 방식들이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