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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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 개인전
수상한 움직임


2022.8.12-9.15
아트스페이스 휴


꿈인가. 한 시간 동안이나 나는 스토리보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상, 단편소설 「실화」(1939) 중에서


그림을 목소리에 비유한다면 안준영의 작업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는, 차분하면서 다소 메마른 거친 목소리를 연상케 한다. 말의 내용보다는 말의 뉘앙스나 히스테릭하고도 지적인 말투에 사로잡히게 될법한. 작가는 불안, 신경증, 소외 등 몇 가지 감정의 키워드로 오랜 시간동안 펜 드로잉 작업에 몰두해왔다. 불면증과 관련한 신체적, 심리적 피로와 강박을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비유하거나(2011)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위해 신체를 해부학적 방식으로 표현하고(2017), 예민한 정신과 대립되는 무력한 신체의 결핍과 갈등이 터져 나오는(2019) 등 작가는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내적 불안으로부터 기인한 여러 신체적 현상들을 작업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전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감정에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그 끝이 자기연민으로 귀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작가는 보편적인 소재인 신체, 좀 더 자세하게는 정신이 작동시키는 변화하는 신체에 주목한다.

작가는 최근 몇 년 간 파편적으로 다루어온 신체의 제한적 표현에서 벗어나 신체와 대상의 결합이나 유기적인 변화를 통해 신체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데 이는 작년 아트스페이스 휴 기획전 <어떤 사람>에 선보인 연작에 유사하게 적용된다. 총 17점의 펜 드로잉 연작은 일체의 간격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어 한 폭의 동양화처럼 길게 뻗어있다. 시점이 이동하며 심장의 형상에서 복슬복슬한 털로 뒤덮인 단단한 열매로, 다시 폭포가 흐르는 녹음 진 숲으로 변한다. 각각의 드로잉은 경계에 그려져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독립하기도 하면서 관계를 맺거나 회피하면서 신체의 유기적인 흐름과 같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의 흐름을 포착하기위해 작가는 가늘고 섬세한 펜의 사용을 고집하는데 덕분에 엄청난 양의 노동과 시간이 쌓여 만든 선들의 응집력은 작업의 밀도를 더욱 단단하고 강인하게 만든다.

이후에 선보인 <수역> 연작에서는 동물의 얼굴-특히 눈이 변이된-과 수면에 반사된 일그러진 모습을 병치하여 정신과 신체에 상응하는 새로운 대립항을 설정한다. 수면의 일정한 영역이라는 뜻의 ‘수역’에 늪이나 수렁을 뜻하는 morass라는 부제를 덧붙인 까닭에 해당 전시의 제목 <썰물이 없음>의 의미가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정지된 상태를 지시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밀려들어오고 있는 일반적이지 않은 정체적 상황은 변이와 왜곡을 불러일으켜 현실에는 없는 변종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10점의 펜 드로잉 신작과 애니메이션 작가 박선엽과 협업한 3점의 영상 작업을 통해 정체된 정서적 상태와 변화하는 신체와의 충돌을 자연의 이치, 우주의 순환 원리에 적용하여 보다 확장된 개념의 객체화를 시도한다. “내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방식을 더 명확히 보고자 하는 목적위에 있으며 또 그 감정이 얼마나 변화하기 쉬운 연약한 기반위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불안을 시각화하기 위한 방식적 차원의 접근에서 벗어나 불안의 원인과 본질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체를 다루는 작가의 진중한 태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글_김현 큐레이터


월-금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2022 아트허브 평론지원 프로젝트
▼미술평론가 이선영 선생님의 글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daljin.com/?WS=33&BC=cv&CNO=342&DNO=20259&PHPSESSID=1a19b4be79c78d8280f0b9bcd6ca397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