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잘딱깔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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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 릴레이전
알잘딱깔센
박현순 개인전


2022.11.30-12.27
아트스페이스 휴


작년 이맘때 박현순 작가의 포트폴리오에는 거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 같은 그림들이 있었다. 최소한의 색과 형태만을 남기고 회화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을 대부분 제거한, 그렸다기보다는 비우고자 하는 그림이었다. 작가는 이에 대해 가장 사실적이고 솔직한 ‘회화’ 그 자체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이번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작업은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작가는 MZ세대의 말장난 같은 가벼운 유머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회화의 솔직함을 재정의한 듯 보였다. 기성세대의 아재개그와 비슷하지만 이미지와 텍스트가 결합된 형태의 ‘짤’은 MZ세대에게는 매우 익숙한 표현 방식이다. 1초, 2초 만에 직관적으로 읽히고 쉽게 소비되는 짤은 작가가 생산하고 영원히 고착되어야 하는 회화 이미지와는 상충되는 개념이다. 이 극적인 관계를 오가며 살아가야 하는 MZ세대 회화 작가로서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이미지의 희화화, 즉 짤을 박제하고 제목(텍스트)을 덧붙여 유의미성과 시간성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짤을 즐기듯이 가볍게 그의 회화와 농담을 유희한다면 그가 추구하는 회화의 진솔함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_김현 큐레이터


월-금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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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김형주 개인전


2022.10.28 - 11.17
아트스페이스 휴


죽은 고라니가 유령처럼 되돌아 왔다


“작은 잔디마당에 잡초는 제거대상이라 생각했습니다. 뽑고 또 뽑고 그래도 다음날이면 계속 피어납니다. 전문가에게 문의를 하면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행위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만큼 잡초와의 폭력적인 태도는 사유까지 이어져 오히려 불청객으로 생각되었던 잡초들이 원래 이 공간의 주인이고, 나와 잔디가 불청객이라는 태도의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1

작가는 죽어 있는 고라니의 사체를 보았다. 먹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날 작가는 일기를 썼다. 주변의 농사 짓는 사람들이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의 피해가 크자 농약을 사방에 뿌려 놓았고 고라니는 그것을 먹고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농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 검정비닐을 밭에 덮어 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필요한 농작물만 햇빛을 받고 나머지 잡초들은 죽어버리는 것이다.


작품 속 이미지는 검은 채색과 농촌의 다양한 사물과 풍경을 지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농촌이고 이곳에서 당신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농산물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다. 검은 비닐 속에 고라니가 누워 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채소가 자란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검은 패턴이 움직인다. 검은 패턴 사이로 배추와 파와 무가 줄을 맞춰 행진하는 환영을 부르고 있다.


작가는 고라니의 죽음과 검정비닐을 연결시킨다. 검정비닐은 자연과 정반대의 상징이다. 검정비닐은 불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검정비닐 없이는 농사를 짓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고라니의 사체를 발견할 때 작가의 손에는 채소를 담은 검정비닐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작가는 주변의 현실, 자연과 인간의 욕망, 노동이 결합된 풍경을 단순한 형태와 채색으로 표현한다. 조형 예술의 미적 세계란 순진무구한 무균실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다종다양한 사물과 욕망이 뒤섞이고 융합되어 오염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배양된다. 땅 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검은 석유가 검은 비닐이 되어 대지의 표면을 덮는다. 그러나 그 쓸모란 농산물을 잘 자라게 하는데 유용하지만 동시에 쓸모를 다한 폐비닐은 곳곳에 쌓여 대지 오염의 원인이 되어 버린다. 현실을 구성하는 자연과 사물은 쓰기에 따라서 쓸모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실용적 쓸모란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검은 패턴은 어떤 예술적 허세도 없다. 작가가 농작물을 표현한 이미지이지만 달리 보면 대지의 오염을 표현한 검은 오일의 인덱스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진실을 읽어내는 통찰의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이미지를 평범한 풍경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단순화한 플랫한 이미지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관리하는 현실을 재현하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작가는 2016년 경기도 파주로 작업실을 옮긴 후 자연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치열한 약육강식과 시장과 경제가 지배하는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작가가 알던 자연과는 완전히 다른 자연이다. 산도 사라지고 사람들의 경제적 이윤에 의해 자연이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농작물과 밭을 묘사한 이미지는 결코 평화로운 자연과의 조화와 화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류는 문명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쉼 없이 자연을 인위적 용도에 맞춰 가공하고 변형해 왔다. 그러면서 자연의 이상을 꿈꾸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꿈꿔 온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란 인류가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조작한 기괴한 망상에 다름 아니다.


농산물과 잡초는 인위적 구분일 뿐이다. 본질적으로는 자연 생태계를 이루는 식물의 여러 종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기능과 이익을 제공하는 식물은 유익한 농작물이 되고 그렇지 못한 식물은 이름 없는 잡초가 되어버린다. 야생동물과 잡초들은 인간과 경쟁한다. 농사란 곧 잡초와의 경쟁이고 전쟁이다. 자연의 생명력은 무섭도록 질기고 인간의 영역을 침입한다. 인간의 상상을 벗어난 자연의 생식력은 공포스럽다. 더 나아가 경이롭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이미지는 농작물과 잡초가 모두 형태만 다를 뿐 동일한 질감과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패턴화 되고 양식화된 기표로 다가온다.


2

작가의 고향은 인천이다. 인천은 수출입항으로서 한국 사회의 산업화를 견인한 공단들이 도시를 형성해 왔다. 산업화의 한 가운데에서 성장한 작가의 경험과 생활 조건은 그 기본 구조가 농산물을 생산하는 논과 밭이라는 인류의 2차 산업혁명의 현장에도 적용된다. 공장이 밀집한 공단의 생태계는 자연과 인간의 노동을 극한까지 쥐어짜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세계는 자본 증식의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은 채 내달린다. 인생의 신비한 비밀은 단순화되고 산술적 통계와 확률의 시스템 속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 생산량에 도달하기 위해 정교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세속화되었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생태환경은 초현실적 긴장의 극단까지 치닫는다.


시각적으로 잘 조형된 이미지가 사실은 약육강식과 자연과 문명이 투쟁하는 무서운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순박한 이들의 삶은 사실 치열한 투쟁 속에 비극적 폭력의 일상으로 촘촘하게 조직된 농촌이다. 우리를 평화롭게 치유하는 시골 농촌은 완전한 허구이며 판타지이다. 흔히 낭만적 풍경으로 묘사되어 온 논과 밭은 인간이 자연을 정교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개발하고 착취하는 공장이다.


본질적 현실이란 결국 평화롭고 행복한 망상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입장과 여건에 따라서 바라보는 상대적(비본질적) 현실을 현상할 뿐이다. 본질적 현실이란 감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상을 넘어서 초극한 어떤 것이다. 작가는 생존과 투쟁의 현장에 잠시 서서 자연과 문명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심미적 특이점을 모색한다. 그렇게 현실과 쓸모의 세계 안에서 작가는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일상적 노동과 합리적 사유를 가로질러 더 큰 쓸모를 사유한다.


궁극적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존재자들은 서로 의존해 있고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사물들에 의존하고 있고, 대부분은 그것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는 삶을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보았지만 사실 문제 해결의 과정이 역설적으로 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낳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의 복잡성과 예측불허 속에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이 뒤엉킨 수많은 사건을 경험하고 이 경험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한다.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이란 가장 비천한 현실을 동반하며 펼쳐진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한 기술과 문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의 복수라는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유년기와 성장기의 경험과 현재 화가로서의 삶, 산업사회와 첨단정보사회의 축과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는 농업의 현실이라는 축이 기묘하게 뒤엉켜 있다. 작가는 회화 언어를 통해 자연의 비극과 인류의 잔혹한 현실을 담담하게 증언하며 삶과 살림의 바닥을 깊이 파고 있다.


김노암(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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