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윤 개인전 - 불가능한 네트워크 1〔아가씨, girlie〕

네트워크는 드러나 있으면서 감춰져 있다. 그리고 유한하지만 수없이 많고 독특한 접속의 경로를 가진다. 그 독특한 접속의 경로를 통해 현대인들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떠한 특정한 경로를 따라 접속한 사용자는 거대하거나 상대적으로 작은 전체의 네트워크에서 단지 일부분에만 접속하고 있을 뿐인 것 이다. 마노비치에 의하면 사용자는 이미 존재하는 전체 네트워크의 일부분만을 활성화 시킨 것이다. 사용자는 새로운 객체로써 네트워크에 녹아 들기 보다 단지 부분을 선택하고 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이건 부정이건 중요하건 중요치 않건 네트워크는 어떠한 목표를 위한 최대의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네트워크는 이율배반적이고 아이러니한 공간의 연속, 하나의 목표로 연결된 거대한 통로인 셈이다. 이는 거의 모든 실제적 행동이 메뉴, 카탈로그, 데이터베이스로부터의 선택을 포함하는 후기디지털 산업사회의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네트워크는 미리 정의된 수많은 메뉴에서 자신의 가치를 선택하여 어떠한 대상을 만나게 해주는 제한되고 길게 늘어선 공간인 것이다.

네트워크의 이러한 성향과 구조는 오히려 사적인 개인의 생활공간을 객관화 시켜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오히려 일반적이고 객관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네트워크는 점차 주관화 되는 것이다. 이 공간은 개인적인 취향들에 의해 변화무쌍하고 다채롭게 변화하게 된다. 이것은 유통체계가 주도하는 시장경제 안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 네트워크는 무엇을 만들기 위한 창조적인 존재라기보다 무엇인가를 팔고 사기 위해 존재 하는 매뉴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네트워크는 개개인의 충동과 취향, 그리고 욕망에 호소하기 위한 기괴한 통로로써 존재한다. 결국 완전하고 완벽한 네트워크라는 것은 육체이던, 공간이던 자신의 몸이 닿고 이동하여 실제를 경험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제 결코(온라인 네트워크를 이용한 성범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것이 어떠한 궁극의 네트워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은 이 시점에서 타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네트워크란 통로는 언제나 강렬한 욕망의 실현을 갈구하는 주체로부터 좁고 작게 시작 되어 확대 되어지는 형태를 띠게 되고 그 공간은 자아가 숨어 지낼 수 있는 꿈과 이상이 혼합된 곳이 되어가는 것이다. 즉, 우리가 네트워크의 접속경로를 따라 어디론가 떠도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리 규정된 정체성을 선택하는 것이며 상, 하의 위계질서를 가진 증폭되어가는 하나의 통로인 것이다. 이것은 뒤틀리고 굴절되어 왜곡되어 있고. 또한 차갑고 가벼우며 요란하게 욕망을 향해 숨겨 있듯이 열려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통로는 감시 당하고 있다.  작가 정성윤   

 

- 전시기간 : 2007. 07. 30 - 08. 25

- Opening : 2007. 08. 04  PM 06:00

- 레지던시 : 2007. 07. 02 - 07. 25

- 작가 프리젠테이션 : 2007. 07. 13 PM 05:00

- 멘토링 프로그램 : 2007. 07. 20  PM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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