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갑규 개인전 빙폭타다.

새로운 모티브의 힘
나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의 신예미술가들, 그 중 한국화의 젊은 신예들의 활동을 주목하는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연간 15회 내외의 다양한 전시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여러 장르와 형식의 작업을 보았고 또 작가들의 거침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재의 불안과 마주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신예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만나는 현실이고, 매순간 동료와 선배 작가들의 작업과 나란히 하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새로운 경로를 찾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2009년 첫 번째 작가로 소개하는 유갑규는 어쩌면 지난 3-4년간 질풍노도처럼 정신없이 확대되고 소용돌이쳤던 한국 미술계의 주변부에 있었다고 보인다. 재기발랄한 젊은 미술가들이 각자의 비전과 실천력으로 유쾌한 한철을 보내고 있는 중에 유갑규는 다소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고 보인다. 대학과 대학원의 수업시기를 보내면서 활달한 미술 현장과는 일정 거리를 둔 채 착실하게 자신의 작업의 방향, 예를 들어 화두, 표현방식, 조형적 효과, 현대적이기 보다는 현실적인 한국화의 모색 등에 몰두하였다. 대부분의 젊은 한국화 전공자들의 보편적인 고민의 장소에 유갑규도 배회하며 머뭇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우연치 않은 계기가 마련되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빙폭’시리즈는 그의 평범한 일상에 한줄기 섬광처럼 이 젊은 화가에게 다가온 듯 인상적이다. 이미 3년 전 처음으로 빙폭을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내게도 당시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으나 지금 돌아보면 유갑규의 앞으로의 행보에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리라 보였다.
  
일반적으로 겨울산수에서 자주 등장하는 폭포는 화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일부분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갑규는 폭포를 화면 전체에 가득 채우고 꽁꽁 얼려버린다. 빙폭이다. 본인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젊은 한국화를 모색하는 중요한 모티브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그의 이 발견을 높이 평가한다. 그 매력적인 모티브를 떠올리며 위험천만한 냉기를 뿜는 빙폭을 한발 한발 오르는 등반가의 모습과 유갑규의 작업과정이 오버랩 된다.
  
무엇보다 새로운 주제나 표현형식에 대한 모색은 한국화분야의 오랜 과제이다. 최근 급격하게 팝스타일의 한국화에 대한 미술계와 일반 대중의 관심 또한 이러한 모색의 한 결실이거나 반증이다. 그러나 새로운 모티브를 분명하며 명쾌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보여주는 예는 흔치 않다. 또한 성공적인 새로운 한국화들도 전통과 현대의 물리적 결합 즉 병치의 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소위 화학적 결합 또는 미적인 변증법적 운동의 만족스런 단계에 이른 예는 매우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유갑규의 빙폭시리즈는 한국화의 새로운 결 또는 길을 제시하는 어떤 실마리를 잡았다고 보인다. 그의 우연치 않은 탁월한 모티브의 발견 또는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결을 붙잡고 계속 나아가길 희망한다.
- 김노암(전시기획자


작가 노트
위에서 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늘 한결같다. 그 변함없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 같고, 장마철이나 갈수기가 아닌 이상 계속해서 일정하게 수량을 유지하면서 흐르는 것이 중도(中道)를 지키는 듯 하고,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며 자신의 길을 확보하는 것이 마치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과도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폭포를 소재로 삼아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폭포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은 매우 야성적이어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조차 싫어하는 듯, 남에게 일부러 투정부리는 듯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TV를 보는데 빙폭(氷瀑)을 오르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것을 보면서 갑자기 이때가 폭포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듯 한 느낌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빙폭을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위험천만한 빙폭을 오르는 두려움 보다는 스릴을 즐기는 듯, 또는 등산을 하며 자연과 같이 호흡하는 상쾌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때부터빙폭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생각하게 되었다.
- 전시 기간: 2009. 02. 07() - 2009. 02. 27()
- opening : 2009. 02. 07 () PM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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