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웅 개인전 몽상(夢想)

이정웅의 경우 ; 

예술가의 자아는 일종의 기만행위인가

 

근래 젊은 작가들과의 대화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는 작품 또는 작가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에 관한 것이다. 지난 시기 거의 모든 예술가들과 예술관련 종사자들 또는 일반 관객들의 정신에 크게 각인된 문제가 ‘소통’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키워드’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이정웅의 작업에 다가가는 최초의 언어, ‘키워드’는 무엇일까? 아니 ‘키워드’는 단수가 아닌 복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선 선배들의 아이디어를 적용해 보면 거의 대부분의 ‘키워드’는 작가의 또는 작품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자리 한다. 주제, 내용, 형식 등등 하나의 예술 현상이나 예술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집합, 그 기묘한 복합체를 풀어내는 첫 번째 언어, 그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이정웅을 둘러싸고 회전하는 불투명한 외피를 풀어내는 첫 번 째 언어들. 작가 노트에 나오는 것들은 지나버린 ‘사랑’이거나 ‘기억’, ‘단절’, ‘고독’, ‘재구성’ 등이다. 작가의 입을 통해 듣는 ‘키워드’는 말 그대로의 ‘키워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증상’으로 이해할 수 도 있다. 라캉의 말을 빌리면 작가가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지칭하고 말하는 것은 ‘증상’인 셈이다. 만일 작가의 ‘자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포획할 수 없는 작가의 ‘자아’는 매번 작가의 외부에 위치하며, 작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일종의 작가와 기획자, 작가와 관객 사이의 상호기만(허위)이 된다. 따라서 작가 스스로의 언어를 따라가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이정웅처럼 섬세하게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 성실한 작가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물론 이러한 견해의 출발은 예술가를 일종의 ‘환자’로 보는 시각을 전제한다.   

우리가 최근에 경험하고 학습한 것들에 따르면 이정웅의 회화는 일종의 자기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대체로 많은 예술가들이 자기 자신을 하나의 주제나 대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며 행하는 데 익숙하다. 또한 그 과정에 의미와 형식에 대한 자기 확신을 단단히 한다

그러나 나 자신과의 관계는 ‘외부’로부터 구성되는 관계이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언어를 통해서이다. 예를 들면 나를 언어화하는 이름은 나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부모라는 타자가 명명하는 것이다. 또한 생활 가운데 내가 나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다. 일상으로부터 나 자신은 나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매 순간 나라고 호명되는 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타자)’이 나를 구성한다.  

 

이정웅 스스로가 제시하는 ‘키워드’가 일종의 무의식적 ‘기만’행위라면, 우리가 전시를 통해 또는 담론화 과정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그의 언어의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의식적이며 능동적인 찾음의 과정과는 다른 일종의 계시와 같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키워드’가 강림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자신도 일종의 자기기만 행위를 무의식적 층위에서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 자신을 포함한 기획자나 관객이나 어느 누구도 이정웅이라는 또 이정웅의 예술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자의 위치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이 의미의 검은 구멍, 막막함으로 은유할 수 있는, 이 숭고한 애매모호함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우리의 상상의 한계 안에 있기나 한 것일까? 그저 소박하게 이정웅의 작업은 하나의 나르시즘의 변형된 형태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 또한 하나의 자기기만이라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근래 젊은 미술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나르시즘의 변주를 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이정웅의 사례를 통해 나는 아니 작가와 우리 자신들은 일종의 전통적인 회화의 언어를 통해 전통적인 문제로 회귀한다. 이러한 회귀의 반복은 예술의 운명이다. 아니 예술가의 운명이다. 예술로부터 소외되는

 

다시 돌아가면 지난 시기 보편적인 화두였던 ‘소통’이란 바로 자기기만 또는 상호기만이라는 허위와 상상의 층위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일지도 모른다.  

-  김 노 암 (전시기획자) 

- 전시 기간: 2009. 03. 07() - 2009. 03. 27() 

-opening : 2009. 03. 07 () PM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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