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연 개인전 Afourium(에이포리엄)전

전시 서문

A4risation

글.김노암(전시기획자)

푸른 하늘에 구름. 고층빌딩 외벽에 반사된 창공에 생긴 비현실적 검은 구멍. 창문이 하나 있고, 곧 하얀 A4용지들이 날린다. 마치 점거농성중인 누군가 던진 전단지 같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은 우리나라 사회현실의 한 단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조충연의 A4용지는 더 이상 실용적인 오피스용품이 아니라 의미 있는 전략적 매체가 된다. 분명 상상력은 습관과 일상의 어두운 면이다.

“모든 일상의 정보들은 A4risation(화)된다. 그리고 동시에 모듈화되고 변환되어 일정하게 적재되고 소통된다.

우리가 경험한 도시적 삶의 다양한 양태들이 A4로 수렴되고 치환되어 재매개되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 뉴미디어 계보학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어떤 한 지점일 수 있겠다라는 가정을 세워본다.

조충연작가의 이번 전시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기반하고 있는 첨단정보사회의 예술가들 또는 예술적 상상력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반성의 계기를 통해 무심결에 우리의 손을 들린 A4용지는 정보적 가치와 해킹, 프로파간더, 전복, 해체 등으로 연이어 미끄러지며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것은 동시에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의 징후로 읽힌다.

“정보의 위상학적인 변화들이다. 수렴된 정보들은 접히고 겹치고 펄럭이고 주름지며 돌돌 말린다. 그때 그것을 접고 있는 몸과 의식이 말리는 것인지 종이가 말리고 접히는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평면적인 정보가 가졌던 지표성은 어느 순간 극적인 국면을 맞는다. 어느덧 정보는 기의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는 기표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도약을 한다.”

예술은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이탈하며 자신의 영토를 구체화한다. 배제와 배제의 과정이 곧 예술의 전개과정이었다. 마침내 예술은 창백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20세기를 장식한 한편의 빛나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리고 무수한 에피소드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며 지나간다. 그러나 예술사적으로 예술은 한 번도 기술과 분리된 적이 없었다. 다만 우리의 의식이 그러한 시각과 판단을 보다 과장하여 학습한 것이다. 기술과 동거하던 예술이 분리되어 흘러흘러 전자정보, 디지털, 미디어의 이름으로 다시 기술과 조우한다.

뉴미디어 시대의 예술 찾기는 여전히 발터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의 출반선상에서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벤야민에게 기술은 예술과 인간해방에 꼭 필요한 파트너였다. 미디어에 얹힌 재현장치는 미적이자 정치적이다.

기술의 전유(專有)는 예술가들의 숨은 욕망이다. 그것은 상상과 환영의 표면에 자리한 검은 구멍이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무언가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낼 가능성들이 튀어나온다. 정보는 어쩌면 기술의 또는 예술의 다른 얼굴일지 모른다. 정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스펙터클이 뉴미디어아트의 최전선(最前線)에서 진행 중이다. 사실 눈에 보이는 전선(戰線)을 그릴 수 없이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가 노트

Afourium(에이포리엄)

글.조충연(작가)

프로젝트 구상의 시작은 지금은 잠복근무 중인 텍티컬미디어네트워크의 A4프로젝트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보의 기본단위로서의 A4에 대한 뉴미디어적 접근으로 기업이나 기관 내부의 정보 부스러기인 이면지를 해킹하고 그 정보를 재전유하는 기획으로 진행되었었다. 이번 전시는 그때의 이슈들에 대한 개인적인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단지, 아니 내 기억에 또렷이 남는 한 여름날 빌딩 창 밖으로 던져져 부서지던 A4들, 담겨진 내용 이상을 그려내듯 공중에서 부유하였고 배경으로 흐르던 몇 마디의 발언들,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사각 종이들을 잡느라 던진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발언자는 A4와 함께 공중에서 산개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사람들은 팔랑팔랑 구겨진 A4를 들고 다니다 나름 자신들만의 화일 방식으로 접어 변환시켜 옷안에 넣고 저장한다. 가끔 그것은 뜨거운 유월의 햇볕을 막아주는 가리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확장된다.

모든 일상의 정보들은 A4risation(화)된다. 그리고 동시에 모듈화되고 변환되어 일정하게 적재되고 소통된다. 20세기 초 수동식(신체의 행동양식 안에서 규정된) 타이프라이터 규격에 맞춘 A4의 기본 사이즈는 비율로 정의되고 자기 복제성 혹은 동일성의 방식으로 종이를 반으로 접거나 자르면 보다 작은 크기의 크기로 각각 이전 크기의 종이의 짧은 변에 평행하도록 반복된다. 마치 기학학적 프렉탈의 연속적인 자기 유사성을 담았던 것처럼 사회적, 공간적 알고리즘 체계를 드러낸다.

우리가 경험한 도시적 삶의 다양한 양태들이 A4로 수렴되고 치환되어 재매개되고있지 않을까? 그것이 뉴미디어 계보학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어떤 한 지점일 수 있겠다라는 가정을 세워본다.

모더니즘적 효율성체계안에서 모듈 혹은 기준, 규정으로 정의된 A4는 종이라는 물질성을 가지면서 가상의 매개가 된다. 우린 많은 것들을 종이로 시뮬레이션한다. 종이인형, 종이비행기, 종이집, 종이호랑이, 종이옷 등등. 언어와 함께 종이들도 표상으로 조직된다. 이때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보의 위상학적인 변화들이다. 수렴된 정보들은 접히고 겹치고 펄럭이고 주름지며 돌돌 말린다. 그때 그것을 접고 있는 몸과 의식이 말리는 것인지 종이가 말리고 접히는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평면적인 정보가 가졌던 지표성은 어느 순간 극적인 국면을 맞는다. 어느덧 정보는 기의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는 기표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도약을 한다.

정보매체, 아니 정보의 자체의 기본단위로서 A4와 가실재의 물질성을 가진 종이가 실재의 가상이나 가상의 실재적 재현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매개와 실재의 분리 불가능성을 통해 매개 행위가 또 다른, 많은 다른 매개와 의존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재매개화(remediation)의 과정이 이번 프로젝트의 주된 관심이고자 한다.

-전시 기간: 2009. 07. 04(토) - 2009. 07. 24(금)

-opening : 2009. 07. 04 (토) PM 6:00

-opening performance: 2009. 07. 04 (토) PM 6:30

<관객이 참여하는 A4 퍼포먼스: 이소영(안무 및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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