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의 자식들:

전후세대의 자식들

우리는 한 때 좌익이었고, 한 때는 우익이었다. 한 때는 진보였고, 또 한 때는 보수였다. 우리는 한 때 친일을 했고, 한 때 반일을 했다. 우리는 한 때 아래를 보다가도 위를 보았고 앞으로 내달리다가도 뒤돌아 달렸다. 우리는 전체주의의 억압을 몸서리치게 증오하다가도 또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유와 따듯한 온기를 느꼈다. 학연과 지연, 지역연고주의의 희생자였고 한 때는 그 수혜자이기도 했다. 얼음처럼 분명한 이념의 차이, 극렬한 이념의 갈등 속에서 어떤 불편함 없이 조화를 느끼고 자연과 한 몸이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전후세대이다. 그런 모종의 동질감과 연대감이 우리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한다. DMZ(비무장지대)는 상징이자 분명한 현실로 존재한다. 존재해야 한다. 영속해야만 한다. 남과 북은 한 민족이자 동시에 이질적인 민족이고, 하나의 국민은 더더욱 아니다. 전후세대의 예술가는 더 이상 DMZ를 과거처럼 고뇌하지 않는다. 향유하고 소비하고 소화해버린다. DMZ를 예술적으로 취급하고 미학적으로 선용하는 것은 거대한 금기였고 분노였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 이유는 또 무엇인가? DMZ를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한가하게 달리고, 수 백만원짜리 아웃도어를 걸치고 국토종단을 마음먹기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축제도 열리고 음악제도 열리고 현대예술가들의 예술적 실험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생전 마이클 잭슨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남북한 당국이 허가만 해준다면 DMZ에서 자신의 일생일대의 멋진 콘서트를 열고 싶어 했다. DMZ는 우리 세대의 모든 분야에 약발 잘 듣는 각성제이자 경기침체를 극복할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블루오션이니, 서둘러 낚싯대와 그물을 던져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아무도 불편하지 않다. 정말 어느 누구도 불만이 없다. 만인이 만족스런 ‘만나’는 구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내적 모순도 갈등도 없는 세대가 등장한다. 모든 것이 상품이고 유흥이다.

4·19가 일어나고 6개월 뒤인 1960년 10월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6.25 전쟁을 겪으며 명분 없는 전쟁에 회의한다. 전쟁터에서 전쟁 전 모스크바로 유학 갔던 사랑하는 여인 은혜와 재회한다. 사랑도 잠시, 은혜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고 명준은 포로가 된다. 거제포로수용소를 거쳐 판문점의 포로송환위원회에 선 명준은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다. 명준은 인도행 배를 타는데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고 충동적으로 바다에 투신한다. 54년이 지난 오늘도 수많은 명준이 명분 없는 냉전의 그늘 속에 배회한다. 그들 또한 중립국을 외친다. 그러나 더 이상 세계 어느 곳에도 명준이 찾는 중립국은 없다. 세상은 어떤 합리적 논리도 상식과 윤리도 팽개쳐버리는 아비규환의 전쟁터이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의 전공은 공교롭게도 철학도인데, 그가 만일 철학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과 타협하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6.25를 겪으며 모두의 광장과 개인의 밀실을 함께 잃어버린 세대는 고령의 원로가 되었거나 편안한 안식에 있다. 전쟁은 그 어떤 이념으로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는 모두의 고통일 뿐이다. 종종 발견되는 유골과 유품만이 끔찍한 과를 증언한다. 80년대 이산가족 찾기로 잘 알려졌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도 않고,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완전한 망각이고 완전한 일상이다. 참혹한 시절은 말끔하고 차가운 차창 밖 풍경이다. 우리가 되기에 너무 멀리 떨어져버린 수많은 명준의 갈등과 고뇌와 고통과 허위의 몸짓을 추체험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세대는 그러기에 안온하고 행복하다. 망각이란 얼마나 황홀한가.

2013년은 남북한 정전협정이 체결 된지 60주년이 되는 해였고 수많은 행사들이 열렸다. 평화와 통일과 행복한 미래를 함께 꿈꾸는 행사들이 넘쳐났다. 정치가들, 경제인들, 예술가들, 연예인들. 관광객들. 휴전협정에 따라 그어진 DMZ를 관광지처럼 관람하고 즐기는(?) 시대다. 실제로 한해 DMZ를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객은 외국인(중국인)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정치와 경제, 사회와 관광이 만나 그 존재의미를 찾는 테마파크인 셈이다. 이념의 키취이자 패러디의 테마파크인 DMZ는 가슴과 머리와 위장과 성기는 각기 따로 독립적으로 욕망하면서도 어떠한 갈등과 모순도 자각하지 못하며 조화롭게 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신비, 그 기적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우리의 평균적인 일상의 다른 얼굴이다.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것은 연어이지 사람이 아니다. 한 많은 격동의 세월도 결국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전후세대는 그들의 자식에게 그리고 그들의 자식의 자식에게 무엇을 물려주었고 무엇을 강탈했는가?

- 아트스페이스 휴 운영위원장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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