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지는 선: 빠키 개인전

우주적 상상력의 즐거운 리듬

비선형적 리듬과 운동을 연출하는 빠키의 설치, 키네틱 작업은 결국 몽환적인 의식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각과 촉각의 운동을 조작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을 비범한 경험의 세계로 진입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일상을 벗어난 의식 상태에서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위한 영토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오픈된 의식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현대예술가들의 직무 아닌가.

그러므로 가장 순수한 조형-형식의 문제도 조형-형식의 문제를 넘어 ‘상상력’의 지층들에 걸쳐있다. 조형과 언어 또는 조형과 개념의 질서정연한 관계가 급속하게 해체되고 새로운 관계와 질서가 구축되는 과정이 예술가 개개인의 세계 안에서 활발하게 생성소멸 과정으로 나타난다. 빠키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하나의 은유이고 그 사물과 연결된 언어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바로 그 자의성을 둘러싼 문제들이 예술분야의 소통이나 관계의 문제와 연결된다. 자의적이란 의미는 의미를 보편적으로 확산하고 소통하는데 불친절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각적 또는 조형적 대상의 조직화라는 예술가들의 임무이자 유희는 관계의 지평에서는 소통의 부재와 혼선의 원인이기도 하다. 불편한 예술이 결국 우리의 상상력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도록 자극한다.

빠키의 오브제들은 매우 경쾌하고 리드미컬하다. 마치 음악을 시각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빠키가 말하는 선(線)의 사유는 보편적인 소통이나 관계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현대예술은 자유의 극한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작가와 예술이 망각되는 지점까지 도약하는 힘이 작동하느냐 하는 점이 작업의 성공과 실패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무엇이 감각적이며 내적인 역동성을, 동시에 보편적이며 특수한 것들을 연상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빠키는 옵아트 형식의 조형효과를 전체적으로 적용하면서 정지 상태와 운동 상태의 조형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랜티큘러를 사용한 이미지들의 중첩과 운동효과는 빠키 작업의 조형적 특징이기도 하다. 작품들은 약간의 엇박자와 리듬감이 여러 겹의 층으로 구성되어 공간에 배치된다. 작가는 하나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장치물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살아있는 화초 뒤에 연출된 키네틱 설치작품과 전시장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말 듯 작동하는 키네틱 설치는 인상적이다. 하나는 매우 정적으로 회전하고 하나는 역동적으로 전시장을 위아래로 휘젓듯이 운동한다. 또한 색을 입힌 LED 조명들은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관객들이 그 사이를 들어가 보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보다 정적이거나 보다 동적인 설치작품들의 시각적 배치를 통해 마치 의식의 어떤 초월적 의사체험을 경험하게 되고 오브제들 사이로 이동하며 만화경처럼 유사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시각적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작은 공간에서의 상징적 관계 경험을 통해 거대한 우주적 차원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마치 고대의 진법(陣法)처럼.

조형물들의 의미화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색채와 단순화한 오브제들, 그리고 그런 오브제들이 운동하는 설치 등 빠키의 작업은 일상 현실의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나 경험을 지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과 현실의 경험을 재현하지 않는 소위 추상작업에 불편함을 느낀다. 게다가 이번 빠키의 공간연출은 다양한 크기의 오브제와 색채가 관객이 무심결에 지향하는 시각적 질서를 의도적으로 교란하고 있다. 배 멀미 같은 신체의 불편한 반응과 의식의 혼란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현세적 질서와 규범을 벗어난 소리들, 인간을 벗어난 리듬을 시각화하는 문제는 곧 빛과 칼라이고 그 크기와 방향, 그리고 형이상학적 또는 우주적 관계와 관련된다. 그러면서도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작업을 통해 빠키는 아주 오래된 태고(太古)의 상상력을 상기시킨다. 태고의 상상력이란 곧 혼돈과 질서의 투쟁을 의미한다. 그 처절한 존재의 운동이 하나의 시각적 은유가 되어 게다가 시각적 오브제들이 즐거운 리듬으로 변한다. 이 리듬은 여러 방향으로 왕복하고 회전하며 생성소멸의 운동을 재현하다.

현대예술은 아주 작은 사물과 이미지, 조형요소들과 그 흔적을 통해서 무한한 운동과 거대한 우주를 연결시킨다. 관객은 물론 작가의 의식은 그 사이에서 분열하고 다시 조합된다. 그것은 자주 카오스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전시 제목 <끝없이 펼쳐지는 선>은 카오스를 전제로 또는 품은 채 ‘무한성’, ‘확장’ 또는 영원성과 관련된 우주적 차원의 상상력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빅뱅 이후 우주적 차원의 운동의 은유이다.

- 아트스페이스 휴 운영위원장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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