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 관한 한 연구: 김도희, 이은정, 최범,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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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 관한 한 연구

<깊이에 관한 한 연구><젊음에 관한 연구(2009)>(갤러리 상상마당), <신뢰에 관한 한 연구(2013)>에 이은 연속 기획전이다. 이 시리즈는 현대미술을 시각문화의 관점에서 보면서 현대미술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과 사회를 이루는 관념, 관습, 현상과 힘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건을 텍스트화하는 전시이다. ‘젊음이나 신뢰’, ‘깊이와 같이 우리 삶과 의식에 깊숙이 터 잡고 견고하게 연결되어있는 개념들이 실제로 어떻게 예술과 사회 속에서 발현하고 있는지 바라본다. 이 기획은 예술가, 인문학자, 디자인 평론가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같은 발음과 동일한 형태의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관통하는 관점과 논리, 입장이 교차하는지, 이 프로그램의 진행과정에 생성되는 대화를 살펴본다. 보통의 전시가 작품 대화 순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시리즈는 그 과정을 역행하고 또 순행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하나의 관념을 놓고 벌어지는 비정형적인 규칙 없는 대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명멸하는 인식의 순간을 포착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는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지적을 받은 젊은 여성미술가의 고뇌와 결국 죽음으로 종결되는, 매우 통속적인 내러티브를 따르며 좌절하는 예술가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깊이라는 말을 들은 예술가의 마음에는 깊이 없음에 대한 고통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다. 깊이를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그러나 결국 깊이를 찾는데 실패하는 고립된 예술가의 의식은 현대의 비극(悲劇)이자 냉소(冷笑)를 낳는다. ‘깊이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한번은 부딪치게 되는 화두 또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인간의 관계와 태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깊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위, 아래, 겉과 속, 수준이 높고 낮음의 정도를 뜻하면서 마치 어떤 객관적인 기준을 두고 그 수직관계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더더욱 복잡한 현대미술에 대해서 그 수직관계의 정확성을 짚어내는 일은 그리 생산적인 결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떤 것의 깊이가 더 깊고 더 무거운지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물질의 매끈한 표면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그 표면을 이루는 거칠고 둔탁한 면 또한 마주할 수 있는 입구를 보아야 한다.   

신체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자신과 대상의 관계를 탐색하는 김도희의 작업은 때로는 고통과 불안함을 불러일으킨다.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두려운 이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듯이, 그리고 관객을 그러한 상황에 던져놓음으로써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유리벽을 깨부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콘크리트 시계>(2011)는 콘크리트 구조의 전시장에서 2주 동안 생활하면서 남긴 기록물이다. 작가는 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여진 예술가와 그를 감상하는 관객사이에 보이지 않는 격차를 마주하면서 동시에 소외시키며 집요한 관찰을 시작한다.

최선은 보통 미술의 재료로 쓰이지 않는 모유, 폐유, 피 등을 이용해 현대 사회와 구성원들을 포함하며 예술의 정의하는 방식과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2012년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현장에서 채취한 가스를 전시장으로 들여오면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이 미술 작품으로 포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각 이미지의 규칙을 해체하면서 미적 감상을 넘어 작품의 이면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모색한다.

김도희와 최선의 작업은 묘한 양면성을 지닌 쌍둥이와 같다. 김도희의 작업이 예술이 줄 수 있는 실재, 즉물성을 그대로 눈앞에 재현한다면, 최선의 작업은 그런 즉물성을 모두 배제한 채 깨끗하거나 아름다운 색면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작업방식이 기준선을 두고 대칭함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예술을 통해 세상이 그려진 경계선 바깥으로 시선을 옮기고 쉽게 잡히지 않는 삶의 이면과 모순을 드러낸다.

인문학자 이은정은 단순히 존재하기만 했던 사물을 이라 명명하는 것,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와 깊이의 관계를 비밀로 비유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나치 전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쟁에 휘말린 개인의 역사와 기억을 좇는 ‘W. G. Sebald’의 장편 문학 <아우슈터리츠>를 통해서 문학작품을 비롯한 예술이 지닐 수 있는 역사와 개인의 삶의 무게를 성찰하고, 예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부여-가능한 힘을 확인한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기존의 디자인 평론에서 나아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속물주의와 사회적 현상에 관해 텍스트로 풀어낸다. 1999년도 제작된 국내 기업의 카드 광고에서 사용된 부자 되세요라는 문구가 한국사회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었듯이, ‘깊이라는 단어는 예술과 개인에게 해당하는 것만이 아닌 집단과 사회, 때로는 국가단위로 적용될 수 있음을 언급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가치와 허구성을 지적한다. ‘깊이에 다가가는 훌륭한 우회로로써 속물을 전면화한다.

단어 깊이는 불편하고, 무겁고 동시에 가라앉는다. 주어진 하나의 단어가 어떻게 인식되고 사용되는지, 심오한(?) 현대 예술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연쇄하는 대화를 통해 예술/예술가의 의미와 역할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에 관한 한 연구는 지속된다.

- 아트스페이스 휴 큐레이터 윤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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