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there is no wind, row: 이미정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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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8 ~ 12.05

돌연변이 벡터(vector)들

이미정 작가의 작업들은 첫째로 매끄러운 디자인 형태로 다가온다.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만화나 디자인, 광고, 게임 등의 시각 문화 안에서 봤을법한 그래픽 도상들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디자인 제품으로 단순히 환원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이러한 도상들을 기반으로 구조물을 제시하고 있는데, 미술공간에서 이들은 조각적인 것, 회화적인 것 혹은 여러 매체가 개입되는 설치로 독해된다. 단순한 도상이지만 제법 크게 제시되는 점, 입체이지만 평면으로 제시되는 점, 작업과 공간의 총체적인 환경으로 제시되는 점은 이러한 평면적인 입체, 작업과 공간이 서로 섞이는 관계성 등이 동시에 인지되면서 회화는 아니나 회화적이고, 조각은 아니나 조각적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것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진동의 축을 만든다. 다시 말해 시각 문화영역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들이 예술의 규범적인 매체의 매개변수 사이에서 읽히게끔 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은 회화나 조각 같은 특정매체로의 읽기가 불투명하다는 점으로부터, 디자인이라 불리는 형식들에게 독해 공간을 제공한다. 매끄러운 벡터식 모델링의 디지털 작업 컴퓨터를 이용한 그래픽 디자인의 이미지 형식에는 크게 비트맵(bitmap)방식과 벡터(vector)방식으로 구분된다. 벡터 방식은 점과 점으로 이루어진 선, 면으로만 이루어진 그래픽 요소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이 벡터 방식을 이용한 그래픽 툴이다.
, 이미지에 맞춰 깔끔하게 제단된 나무 합판, 아크릴 채색, 조립으로 만들어지는 그의 시각적 구조물은 유아용 나무그림 퍼즐이나 블럭류의 장난감, 혹은 놀이방안의 놀이 구조물, 연극, 뮤지컬 무대장치 같은 사물에 대한 레디메이드 차용으로도 읽혀진다.

이러한 읽기는 사실 특정 매체에 대한 기준에서 발휘되는 수용이나 해석으로, 예술작업의 정체성을 작동시키는 과정인데, 전시대상과 놀이대상사이의 변형이 가능한 작가의 작업은 모듈화된 사물(object)에 대한 ‘돌연변이 좌표’를 만들어낸다. 작업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형식은 안정된 오브제가 아닌, 상황에 종속되는 사건들과의 관계에 따라 이해됨을 보여준다. 하지만 보다 더 주목할 것은 유동적인 이 좌표들은 자신이 쓰임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듯 하지만, 역으로 자신이 아닌 자신이 속해 있는 매체(가령 회화나 조각, 설치 혹은 제품)나 상황(미술 공간, 극장, 놀이 공간)등의 시스템 필자가 말하는 시스템은 작가가 말하는 프레임과 다르지 않지만, 시스템은 코드를 입력하면서 수시로 수정이 가능하고 기존의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든다는 면에서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한다.
들을 자극시킨다는 점이다. 회화가 조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조각이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미술 공간은 극장이나 놀이 공간으로 인식되고 체험되면서 기존의 시스템은 인식착오의 상태를 거쳐 업데이트의 신호를 알린다. 즉 주변과의 관계에 따라 생산되는 이 돌연변이적인 작업들은 ‘범속적인 시스템’의 오류를 드러내게 하고, 이 모듈화된 시스템들을 흔들어 놓고 있다.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대상들은 그 목적의 시스템에 따라 읽히고 사용되고 활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상이 느슨하게 만들어졌다면(일종의 변칙코드처럼), 이들은 오히려 시스템을 확장하고 재편한다. 작가의 느슨한 오브제들은 그 시스템의 경계와 영역, 한계를 비특정적으로서 유동적으로 바꾸고 사회적, 역사적, 제도적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의 형식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번전시에서 선보이는 ‘scene’ 시리즈는 2016년 ‘scene blocking’과 같은 맥락의 일환으로, 연극에 쓰이는 장치나 도구(만약 무대장치로 읽는다면)들이 정해진 위치나 세팅에 맞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배치를 바꿀 수 있는 하나 혹은 복수의 씬으로 연출되고 있다. 이 안에서 펼쳐지는 각각의 작업들은 일상에서 통상적으로 인지하는 ‘상징’이나 ‘규정된 소스’들을 가지고 시각적인 구조물로 번역한 구조물들이다. (2017)은 ‘If there is no wind, row(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노를 저어라)’라는 ‘관용구 소스’로부터 연상된, 또는 역으로 트위스트 시킨 상황이나 장면의 재현으로, 이 작업에서 제시된 폭포는 바람이 불지 않은 상황에서 경험하는 사회규범적인 태도와 사회비판적인 냉소적인 시선을 동시에 가지고, 끝이자 경계, 한계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의 은유로 제시된다. 작가의 시각적 치환은 의미화 되어 있는 소스들을 의미로부터 떼어 놓는데, 다시 말해 폭포를 재현한 구조물은 일상적 통념에 대한 상이된 방향성들을 가지는 ‘랜덤함수 사물’들로 제시된다. 이 랜덤함은 특정한 이슈로 고정되지도 않고, 모호하지만 무심한 태도를 함의하고 있다.
이러한 랜덤함수 사물들을 모아 연출된 ‘랜덤 씬’들은 그 자체로 공간을 매체로 하는 자신만의 형식을 구현하게 된다. 앞서 말한 비특정적 작업들의 느슨한 배치와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 씬들은 장소를 흔들고 다양하게 관찰되고 기술 될 수 있는 랜덤한 매체로 바꾸고, 작가는 이를 매개로 하는 예술 창작을 수행해 나간다.

작가가 재현하는 ‘씬’은 관객이 경험하는 공간이자 배경, 그리고 대상으로써의 사물이다. 이는 사회를 배경이 되는 ‘공간’이자 관찰 ‘대상’으로 인지하고 사회가 규정하는 프레임을 읽으면서 상정하는 금기들을 뒤틀어보려는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데 있어 설득력 있는 형식으로 다가온다. 단순한 폭로가 아닌 고정된 프레임을 느슨하게 만드는 ‘공간 연출’로의 형식은 시스템의 규정과 재규정의 반복성, 그리고 그 틈 사이에서 발생하는 변수들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 아트스페이스 휴 큐레이터 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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