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호 개인전 : 다큐멘터리_경험과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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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호 개인전

다큐멘터리_경험과 기억 


2018. 12. 05 - 2019. 01. 08  


흔히 경험과 기억은 정확과 명료를 향한다. 그 말은 거꾸로 현재가 결코 정확하지도 또 명료하지도 않다는 인식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건과 관계에 대해 우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러했는지 정확하게 안다면 굳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또는 미학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가에게 세상의 수많은 사건과 관계들은 모호함과 불합리와 부조리의 끈끈한 덩어리로 이해된다. 그리고 작가는 마치 그런 괴물과 같은 세상에 대해 다큐멘터리라는 총을 쏘는 것이다. 사실 초기 영화 제작자들은 모두 카메라 렌즈를 총구와 연결해 은유하곤 했다. 한 개인, 한 사회의 그 시대의 경험과 기억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은 실존의 욕망이다. 한 존재가 존속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생명연장이기도 하다. 실존을 위한 운동은 그 방향과 세기가 명확할수록 인식은 확실성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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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호 작가의 전시는 작가가 지난 10년 간 진행해온 작품 가운데 일부를 상영한다. <옥포조선소>는 대우조선해양 창립 40주년 행사를 위한 집체극을 준비하는 과정과 행사 준비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노동자들의 일상적 노동의 시간을 병치하는 다큐멘터리다. 옥포조선소의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평범한 대화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떠올리면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또는 희망적인 의지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킷틀락 타히믹의 밤브카메라>는 한국을 방문한 영화감독 킷틀락 타히믹의 일정을 찬찬히 쫓아간다. 주위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을법한 촌부의 모습을 한 모습의 주인공은 삶과 예술의 관계를 일상과 평범의 차원에서 보게 된다. 킷틀락 타히믹은 한국의 여러 곳을 스마트폰에 찍고 담는다. 종종 전통 의상을 떠올리는 복장으로 그가 평범한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빗소리, 바람소리, 도로의 자동차소리, 라디오에서 들리는 방송 등 일상을 구성하는 백색소음이 가득하다. 간간히 대화가 오가고. 한국을 방문한 이방인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현재 방문한 이국의 풍경과 풍속을 비교하며 찬찬히 걷는다. 외국인 영화감독의 한국방문기를 미시적으로 담아가는 일종의 인간극장과 유사한 또는 개인적 소회와 인터뷰로 콜라쥬된 로드무비로 보인다. 다민족, 다문화와 다양성과 역사의 다층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작업들, 인류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 속 주인공은 예술가(영화감독)가 일종의 인류학자나 샤먼이란 인상으로 그려진다. 이 다큐멘터리의 마무리는 젊은 시절의 주인공 얼굴이 등장하며 선언하듯 “나는 킷틀락 타히미다!”라고 말한다. 다양한 억압적 조건 속에서 실존의 망각과 왜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기 주체성의 선언 같이 의미심장하게 끝난다. 킷틀락 타히미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이 영상을 보면 그가 평범하지 않은 삶과 사유와 활동을 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서울역>은 방치되었던 옛 서울역을 복원하는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쓸고 닦고 자르고 붙이고 시멘트를 붓는다. 다 밀고 새로 짓는 것이 돈도 절약되고 시간도 덜 든다. 그러나 옛 건물을 복원하는 것은 결코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일이다.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과정의 디테일을 잘 담고 있다. 복원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하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한 늙은 노동자는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아주 평범한 일임에도 할 사람이 없어서 자기 같은 사람이 일을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무슨 고급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고 말한다. 기차역이 나오고 기차길에 노동자들이 앉아서 작업중이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는 깃발을 든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복원 공사는 묵묵히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펼쳐진다. 공사 중에도 노동자들은 유머와 웃음이 간간히 드러난다. 젊은 동남아 노동자들도 늙은 노동자들 속에서 낙천적으로 노동하고 이러저런 농담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소음이 요란한 기차길 옆 그늘에 누워 잠시 낮잠을 잔다.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일일이 걸레질을 하는 노동자들을 카메라가 쫓는다. 개관전을 준비하는 예술가들과 공사를 마무리하는 노동자들이 서로 뒤섞여 녹아든다. 개관전은 아주 짧게 스킵하고는 어느새 해가 바뀌고 겨울이 되어 소복히 눈내리는 기차역을 보여준다.  


2

오늘날 거의 모든 문화와 예술이 재미를 추구하는 시절이다. 그러나 가끔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세상의 흐름과는 다르게 재미와는 결을 달리하는 분야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다큐멘터리는 오락성은 물론 시장성이라는 측면에서 투자를 받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다큐멘터리는 아주 적은 예산을 투자받아 어렵게 제작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 예산들은 대부분은 정부나 비영리단체 등을 통해 수급된다. 다큐멘터리란 아주 적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최소의 인원으로 제작하기 마련이다. 마치 영화산업과는 동떨어진 존재로서 아주 외롭고 고독한 실존의 조건과 미학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빈곤의 상태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상은 더욱 절박하고 더욱 치열한 생활과 미학, 정치와 미학이 뜨겁게 엉켜있게 된다. 대부분 다큐멘터리의 주제와 소재는 진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윤호 작가의 지난 10여 년간 지속해온 다큐멘터리 작업은 말 그대로 고독한 모색처럼 보인다. 영화 시사회 등 몇몇 상영회에서 작품을 상영한 것 외에는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형식을 갖춰 배윤호 자신의 다큐멘터리 미학을 공공의 영역에서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다. 작가의 다큐멘터리에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 이전이나 이후의 군상, 풍경이 느리게 또는 콜라쥬의 방식으로 반복된다. 그의 작품은 보통 주제나 소재와 관련된 일상의 한 순간에 문득 시작되고 느리게 천천히 진행되다 갑자기 종료된다. 주제와 서사는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것들이지만 그 표현은 결코 대중적이 않다. 배윤호의 다큐멘터리는 독립영화, 비주류 영화, 영화와 비디오아트 사이를 왕복한다. 작가의 다큐멘터리는 망각과 오류의 사이에서 마치 섬처럼 기억을 잡아두려는 듯 인물과 사건과 풍경을 쫓는다. 인무부의 인터뷰나 대화는 파편적이다. 격렬하지 않는 다소 완만한 편집으로 일관한다. 주제나 소재는 대부분 우리 주위에 아주 익숙한 것이었으나 오랫동안 망각되거나 가볍게 다뤄왔던 것들이다. 영상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시간이 생활을 무한의 경지로 밀어내고 있다고 느낀다. 출연자들과 그 장소와 그 풍경들, 그 만남과 관계들은 결코 영속적이지 않다. 순식간에 사라질 것들이다. 어쩌면 다큐멘터리는 기억의 기술이자 역설적으로 망각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 아트스페이스휴 디렉터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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