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기에도
그림을 그리기에도
양경렬 개인전
2025.5.30-6.26
아트스페이스 휴
경기도 파주시 산남로 37-9
작업실 창으로 새어 들어온 빛이 캔버스에 내려앉는 중이었다. 창밖은 온통 초록으로 만연한데 그의 작업실은 느닷없이 차분하고 서늘했다. 작업실의 높은 천고 끄트머리에 있는 창문마저 불투명한 무엇으로 가려져 빛은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캔버스 끝에서 주춤하던 빛은 우리가 몇 개의 작품을 지나는 사이 곧고 환하게 캔버스에 내려앉았다.
“작업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빛은 아침과 오후, 맑은 날과 흐린 날, 빛은 매번 다르게 스며들고, 그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와 내 감정의 결도 달라진다. 그 빛을 통해 나는 시간의 흐름, 기억의 조각, 그리고 덧없음과 같은 감정의 순간들을 붙잡고자 했다. 빛은 나에게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정서적 리듬과 감각적 서사를 형성하는 요소이다.”
양경렬 작가는 3년 전 무렵부터 사생을 시작했다. 작업실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앞으로는 반짝이는 강이 늘 그의 주변에 있었으니까. 그림을 그리지 않기에는 너무 아까운 계절이었으니까. 사생은 몹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나무들, 얕은 개울과 풀과 돌들을 담담하게 그린 작업을 보고 있으니 그가 이전 작업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간절하게 덜어내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양경렬 작가의 이전 작업은 차분한 그의 작업실처럼 신중한 그의 말투처럼 이성적이고 치밀한 것이었다. 그의 작업에는 늘 인물이 있었다. 인물이 없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인물(군중)이 모이는 장소가 암묵적으로 이를 표의하고 있었다. 인물은 그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자 현재를 기록하는 행위로 화면에 새겨졌다. 그리고 이는 빛의 강한 대비와 화면을 분할하는 대립적 구도로 명확하고 강인하게 각인되고는 했다.
2023년 개인전 [정물: 경계의 제스처]을 계기로 양경렬 작가는 자연과 빛으로 인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의 주요한 소재였던 광장은 산과 강으로, 모뉴먼트는 빛으로 치환되었다. 한 화면에 시공간이 교차하며 대립적 구도를 유지하던 그의 작업은 사생을 거쳐 비로소 상하, 좌우의 구분을 지우고 자연의 겸허함을 묵묵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연의 풍경이나 주변의 사물, 작업실 안의 고요한 공기마저도 나에게는 감정의 매개체가 되고 ‘감정’ 정물을 통해 사생을 이어가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 너머에 숨어 있는 감정의 파편을 발견하고 그것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나의 사생은 관찰을 넘어 감정의 층위와 움직임을 기록하는 심리적 행위에 가깝다.”
베르그송은 과정 철학의 주요 개념으로 연속적인 의식의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의 본성을 지속(durée)으로 보았다. 양경렬의 이전 작업을 과거의 특정한 시대나 장소를 현재와 충돌시켜 대립이나 갈등을 일으키는 정지된 상태의 사건으로 본다면 그의 최근 작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직관과 사유 행위를 반복하는 지속의 행위로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사생 작업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오랜 시간 지속해온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이 인식과 의식의 반복적인 성찰을 거듭하며 새로운 층위로 나아가는 필연적 과정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글_김현 큐레이터
1. 옥천면 양천리 304_1, oil on linen, 100×63cm, 2023-5
2. 옥천면 양천리 304_1, oil on linen, 162×130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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