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빈 개인전 - 즐거운 계획

즐거운 계획: 상처를 지우는 방식

1. 그녀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생각나는 이미지 몇 개뿐. 잿빛 하늘, 불룩한 돌담, 하얀 손, 빨간 피. 그녀는 달리고 있었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계속 달렸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돌담은 불룩했다. 하얀 손, 빨간 피. 하얗던 손은 금방 빨갛게 물들었다. 불룩한 돌담은 죄가 없다. 그저 그대로 있었고, 하얀 손이 멋대로 훑고 갔으니까. 살짝 살짝 드러나는 빨간 피. 어쩌면 피는 없었는지 모른다. 피보다 진한 슬픔이 그녀의 눈에서 흘렀기 때문이었을까. 그 모습을 봤을 때, 저 사람은 상처뿐이구나,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블루>라는 영화제목처럼, 청초했던 그녀다. 하지만, 빨간 피가 흐른 후, 우울해 보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생각은 여전히 남아서 괴롭힌다.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자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의 문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타인의 아픔과 상처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묵묵히 삭히는 도리밖에. 결국,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 묵묵히 들어주는 정도, 아니면 냉정히 외면하든지. 그것이 현실이다.

2. 장유빈의 <즐거운 계획>은 <블루>만큼 강렬하진 않다. 터질 듯한 분노도, 타오를 듯한 빛깔도 없었던 탓이다. 굳이, 닮은 점을 찾자면, 잿빛 바탕 정도랄까. 외려, 다른 점이 많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왜냐하면, 작업의 질료도 그렇고 방식도 그렇고, 확연히 반대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르기’보다 ‘당기’고, ‘터트리기’보다 ‘갈무리’하고, ‘키우기’보다 ‘줄여’ 놓았다. 예를 들어, 표적으로 선택된 토끼를 봐도 그렇고, 무기로 선택된 뿅망치를 봐도 그렇다. 둘 다 명백히 ‘하강’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강이란 내려가는 것, 대상의 크기나 능력의 정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녀가 토끼 때문에 분노했을 리는 당연히 만무하다. 살다 보면 부딪히는 사람들과 사건들 때문에 분노했을 터, 망치로 때리고 화살로 던지고 싶은 대상은 분명히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대상을, 그런 강도를, 그녀는 약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장유빈의 질료와 방식은 애교스럽고 장난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해서, 간난아이가 육중한 쇠구슬에 금방이라도 깔릴 것 같더라도, 토끼가 날카로운 창에 찔릴 것 같더라도, 별로 심난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언뜻 보면 잔인한 사건이 멀지 않아 일어날 것만 같지만, 결국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뭐랄까, 풍선을 터질 때까지 불고서 터뜨리려고 했는데, 잠깐 주춤한 탓에 순식간에 바람이 빠져버린 것 같다. 이 같은 면모는 작업에 그대로 반영되어, 무엇인가 터트리기 직전에, 멈추어 서있다. 망치도 화살도 하나도 안 썼다. 그녀는 분노하나, 털어내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블루>하고 겹치는 측면이 불거진다. 그것은 바로 ‘안으로만’ 삭히는 아픔과 분노다. 화살은 ‘내부로만’ 향해 있었던 것이다.

3.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같이 작은 상처는 물론이요, 시나브로 커다란 상처가 할퀴어 댄다. 그나마 작은 상처라면 어떻게든 참고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작은 아픔조차, 더듬이가 너무 많다고, 자기 신경이 너무 섬세하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넘기곤 한다. 문제는 상처가 컸을 때다. 마치 주변 세상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아득해질 정도로 온몸이 마비될 정도의 상처가 생겼을 때다. 어지간한 문제라면 훈련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훈련이 통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상처가 그렇다. 이놈의 것은, 몇 번을, 아니 수십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날이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실수는 되풀이된다.”(양귀자) 이 얼마나 야멸찬 말인가.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왜 나만 아픈 거지, 울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결국, 혼자서 짊어질 짐이다. 쉽지 않지만, 얼마간 버티면 해볼만 해진다. 누구라도 아플 당시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픔이 잦아야, 시간이 지나야, 겨우 생각할 요량이 생긴다. 아픔과 고통을 어떤 식으로 수용하는지, 그것이 관건이다. “고통이 없다면 인간의 의식이나 사유도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닥친 고통이 관심과 사유를 유발한다.”(김유동) 아름답지 않은 말이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사람과 세상과 부딪히는 한, ‘마찰’은 피할 수 없는 탓이다. 결국, 아픔을 아픔으로 끝내선 안 된다. 아픔을 통해서 ‘바깥’을 담아낸 인식을 낳아야 한다. 아프더라도 묵묵히 견뎌내고 마찰의 대상을 또렷이 쳐다봐야 하는 것이다.  아트스페이스 휴 기획팀

- 전시기간 : 2005.09.09 ~ 2005.09.29

- Opening 2005.09.09(금) pm 06:00

Comments (1) to “장유빈 개인전 - 즐거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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