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승 개인전 - Sleeping whales

1. 햇빛을 받아 해안은 온통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파도에 밀려 고래들이 뭍으로 올라와서는 헐떡거리며 죽어갔다. 그렇게 차례차례 해변으로 올라온 고래들이 죽음의 제의를 펼치는 동안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경이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바로 옆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가 치고 있었지만 고래는 해안으로 해안으로 밀려왔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익사체였다. 자연이 인간에게 잠시 허락한 장엄한 신비. 사람들은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그들이 치르는 죽음으로의 여행을 바라볼 뿐이었다.

종종 해외 토픽에 실린 고래들의 이 이상한 죽음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최근에 밝혀진 그 원인이 잠수함과 군함들이 바다에 쏘아 댄 음파탐지기의 강한 음파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정 주파수의 음파로 정상적인 삶과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고래들의 의사소통체계를 인간이 만들어낸 파괴적인 인공 음파들이 파괴하고 혼란을 일으켰고 고래들은 미쳐서 해안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고래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코끼리 또한 매우 고유한 음파를 통해 생활하는 것이 최근 알려졌다. 코끼리들은 대단히 낮은 저주파를 내는데,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역의 음파는 넓은 아프리카 평원의 수 킬미터씩 떨어진 코끼리들이 자신들의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만일 고래의 집단 자살의 예처럼 코끼리들의 의사소통 체계에도 문제가 생기면 현재 코끼리들의 생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재앙으로 파괴될지도 모른다. 이름모를 거대한 협곡 사이의 동굴을 향해 죽음을 앞둔 늙고 병든 코끼리들이 무엇에 홀린 듯 자신을 이끌어 간다는 오래된 이야기는 더 이상 전설이 아닌 현대 인류가 만들어낸 재앙의 전주처럼 들린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각종 소리들, 잡음들, 전파들, 음파들이 자연재해를 낳고 있다. 인간의 이기적인 소리의 독점과 남용은 자연과 자연사물의 질서와 운동을 비틀고 왜곡하고 마침내 인간 자신이 자기 존재의 위치와 방향을 상실하고 미쳐버리는 것이며 인류의 자살로 이어지는 거대한 시나리오처럼 보인다. 소리의 문제는 매우 경쾌하고 즐거운 쾌락과 유희의 주위를 맴돌다 점차 삶과 죽음의 문제로 미끌어져 간다. 환경운동가들, 생태과학자들, 예술가들이 연대한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존재의 고향을 향한 원형적 노스텔지아에 귀기울일 것과 우주 가운데 쉼 없이 요동치고 운동하는 세계의 소리에 조응하고 순응할 것을 명령한다. 고래들과 코끼리들이 상생하는 소리의 세계는 인간의 귀와 마음에 아름다움과 쾌감을 일으키는 화음의 세계를 아주 작은 세계로 만들어 버린다. 이 거대한 피조물들은 인간의 귀가 결코 알아챌 수 없는 오래된 신성한 언어를 기억하고 사용해 왔다. 인간은 그 세계를 잠시 기웃거리며 지나치는 객일 뿐이다.

2. 이학승은 갤러리에 작은 방송국을 차리고 자신이 편곡한 고래들의 음악(?)을 갤러리 내에서 송출하고 수신하는 과정을 연출한다. 이 작은 방송국의 한 구석에는 소음과 인위적 음파에 반응하고 몸을 떠는 기이한 새가 그 과정을 더욱 극화한다. 이 과정은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소리를 더듬어간다. 갤러리 천장에는 작은 휴대용라디오 수 십대가 매달린 채 빙빙 돌며 관객의 머리 위에서 웅성거린다. 너무 오래전에 잃어버린 기억의 단편들이 아우성을 치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거기서 파장과 리듬이 생성된다. 아마도 의식적으로 노력해서라기보다는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갑자기 우리의 의식을 호출하는 어떤 순간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의 의미들로 가득한 문명과 역사의 소리가 아닌 만물의 고유한 소리와 우주의 노래를 은유한다.

송출되는 음악 중에는 언젠가 작가가 런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유랑 악사의 기이한 악기와 그 악기의 독특한 소리들이 고래들의 노래와 함께 편곡되어 연주된다. 고래의 울음소리에 빠져들었듯이 작가는 이름모를 악사의 소리에 매료되어 소리를 수집하고 재구성하였다. 그것은 호출이고 영감이기에 소리들이 스스로 작가에게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길거리 악사를 통해 어떤 비의적인 순간에 들어섰고 이전 경험의 세계에서 밀려나와서는 전혀 다른 세계의 문턱으로 이끌렸던 것이 아닐까.

세계는 점차 인간의 소리로 가득 차버린 세계는 자신의 본래 소리를 상실한 채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존재의 침몰과 망각의 승리였다. 망각은 인간이 자신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건을 단지 무의미한 중얼거림으로 환원시킬 뿐이다. 흰 고래는 결코 멜라닌 색소가 생성되지 않은 돌연변이가 아니다. 흰 고래는 과학과 의미의 존재가 아닌 상징과 은유이다. 흰 고래는 생과 사를 둘러싸고 울리는 소리의 현현이다. 흰 고래는 어디에서 자신의 소리를 되찾을 것인가. 아니 인간 자신, 작가 자신은 어디에서 자신의 소리를 되찾을 것인가. 아트스페이스 휴 기획팀.

- 전시기간 : 2006. 2.4 ~ 2006.2.22

- Opening 2006.2.4(토) pm 05:00

Comments (1) to “이학승 개인전 - Sleeping wh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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