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들: 김미래 김창영 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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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들: 김미래 김창영 이희준

2019.05.15-06.18



산책자들 : 추상-도시를 거닐다

임지연(철학박사, 미학)




세파에 지쳐 한적한 시골마을로 향했던 루소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제 이 세상에 나는 혼자다. 더 이상 형제도, 가까운 사람도, 친구도, 사람들과의 교제도 없다. 오직 나 자신뿐이다.”(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 외딴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자발적 고독, 이에 더하여 루소에게 산책은 그 자신을 자기 내면의 더욱 외진 곳으로 떠나보내는 작업이었다. 감추어져 있던 오랜 기억과 사념들, 쓸모없이 버려진 것으로 보였던 사유의 단편들이 의식의 표층으로 담담히 떠오른다.


이제 고독한 산책을 위해 시골로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 보들레르는 금속과 대리석과 물이 이루는”, “은은하거나 빛나는 금수반 속에 가득한 폭포와 분수들”, “무수한 계단과 아케이드로 구성된 도시 공간을 배회한다.(보들레르, 《파리인의 꿈》 중) 그의 또렷하게 취한 눈이 파리의 우울하고 어두운 구석들을 비척거린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보이는 도시의 막다른 골목, 어디로 가야하지? 그러나 도시의 유목민에게 도시에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별 일이 아니다.”(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중) 간판과 행인, 술집과 상점들이 그에게 말을 건다. 냄새와 이미지와 소리와 감촉과 맛으로 말하는 사물들의 오랜 언어. 사물의 말을 들으며 헤매는 기술을 머리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터득한 산책자의 서늘한 시선이 도시 한 구석에 내려앉는다.


회화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실험하는 아트스페이스 휴의 이번 기획전 《산책자들》은 20세기 추상회화 이후 추상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모색한다. 특히 한국 추상회화의 지형도에 또 하나의 길을 내고자 한 이번 기획의 교차로에서 여기 세 명의 산책자들이 조우하였다. ‘평면성이라는 공통의 추상 문법을 익힌 자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세대 변이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품어봄직한 정서적 고향으로부터 어느덧 멀리 떠나온 자들, 이들이 내보인 추상-도시 속에서 평면의 다양한 가능성과 새로운 미적 주체의 등장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김미래 작가의 작품에서는 길의 모퉁이를 도는 자의 시선이 감지된다. 그의 시선은 촉감적이다. 나무 패널 위에 천을 씌우지 않고 작업하는 그는 나무 패널이 지니는 거칠고 딱딱한 물성을 작품의 기본 요소로 삼는다. 벽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며 모퉁이를 타고 돌 때처럼, 패널의 생생한 감촉을 느끼는 그의 시선은 패널의 앞면을 돌아 측면으로까지 이어진다. 촉감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보다 원초적이고 신체적인 감각이다. 그것은 한 대상이 주체 내부에서 관념적 표상으로 자리 잡기 이전, 대상의 생생한 존재-사실을 일차적으로 수용하고 인지하는 능력이다. 나아가 그러한 존재의 세계는 언어로 규정되거나 용도로 일반화되기 전, 어떤 것으로든 무한하게 생성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시간대에 속한다. 그의 촉감적 시선이 탐닉하는 본질적인 대상 역시 사물의 표층에서 감지되는 이러한 잠재력들이다. 그의 시선은 주변에서 만져지는 모든 것들로 향한다. 도시의 수집가로서 작가의 시선에 닿은 사물들이 화면 위에 어떻게 최종 배열될지는 언제나 미결정의 상태이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결단의 순간은 역시 패널의 딱딱한 표면을 탐색하는 중에 이루어진다. 그렇게 최종 배열된 화면은 작가의 물러설 수 없는 실재 세계를 반영한다. 그것은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것이다. 그의 딱딱한 표면은 추상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체적 특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희준 작가에게서 감지되는 것은 설계자의 시선이다. 그의 설계 작업은 철저히 걷는 행위를 통해 시작된다.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생산과 소비의 경직된 틀,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이 보이는 그 꽉 짜인 자본의 공간을 거닐며, 그는 생활 세계를 이루는 새로운 공식을 그만의 추상 언어로 완성한다. 설계자의 시선에 붙들린 것은 도시 공간에 자리한 일종의 대립성이다. 도시를 걸으며 관찰한 과거와 현재, 쓸모있음과 쓸모없음, 투박함과 세련미 등의 대립은 평면과 입체, 수직과 수평, 물성과 형상성 간의 대립으로 화면 위에 배치된다. 도시 공간과 추상 공간에서 발견되는 대립의 이러한 전면적 배치는 작가로서 그가 지니는 내적 긴장감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내적 긴장감이 고조될수록 대립의 완전한 통일성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 설계자로서 그의 공식이 완수한 바이다. 그의 통일은 두 항의 대립을 뭉뚱그려 단순히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대립의 투명한 제시라는 점에서 존재론적 평등 개념에 가깝다. 과거와 현재, 수직과 수평, 평면과 입체를 평등하게 바라볼 줄 아는 작가의 설계 작업에서는 추상회화를 극단에까지 몰아붙이는 과감한 결행이 엿보인다. 추상이 지니는 역량의 극대화,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그 투쟁의 현장을 그는 회피하지 않고 직시한다. 1월 일본 비에이 지역을 여행하며 모은 이미지들을 기반으로 작업한 이번 작품들에서 그 역량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창영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강하게 감지되는 것은 추상 형식 속에 서려 있는 숨결이다. 그의 작품은 딱딱하지 않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일어나는 세계의 일렁임과 같이, 그의 작품은 경직된 것처럼 보이는 도시 공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이번 작품들의 제작 방식 및 형식의 진화에서 발견된다. 과거 작품에서 작가는 캔버스의 질감이나 채색의 프로세스가 보이지 않도록 화면상에 극도의 평평함을 추구했던 반면,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서는 수직의 결들이 켜켜이 화면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오랜 시간 타지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한 것과 더불어, 무엇보다 주제의식의 변화가 눈에 띤다. 빛과 그림자의 상호 습합에 천착했던 작가의 시선은 이제 직선과 곡선, 자연과 인공의 관계성으로 옮겨 왔다. 빛과 그림자, 절대적 진공 상태 속에서 무릇 생성의 기원지를 마련했던 작가의 몸속으로 새로운 숨이 훅하니 들어왔다. 들숨은 날숨에 의한 것. 그가 내뱉은 숨이 새로운 공기를 머금고 작품 안에 새겨졌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산책하는 그의 호흡에 맞춰 도시의 실루엣이 출렁인다. 솟아오를 줄만 아는 도시의 욕망, 산책자는 권태롭다. 그러나 권태는 실존적 자각이 시작되는 때. 이제 작가에게 세계는 수직만이 아니라 수평적 형상으로도 포착된다. 수직과 수평의 교차 속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 할 것 없다. 산책자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추상-도시의 지도는 몸으로 작성된다. 그것은 손으로 감촉하고 발로 걷고 느리거나 느리지 않게 숨을 쉬는 가운데 그려진다. 몸으로 그리는 지도 제작자는 기존의 주체와는 분명 다른 주체이다. 그는 신체를 지니고 존재론적 평등 속에서 매 순간 호흡하며 살아간다. 모든 것을 조망하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시선이란 과거의 유물이거나 환상일 뿐이다. 몸을 입고 다시 태어난 추상의 정신, 그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위를 느낀다. 육화된 정신은 하늘에서 대지로 내려와 도시의 후미진 골목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만지고 걸어내고 숨을 불어 넣으며 길을 낸 추상-도시, 노동하거나 소비하지 않으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도시 공간에 새로운 삶의 양식이 자리하는 방법도 어쩌면 이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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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frame, acrylic on canvas, 72.7×60.6cm, 2019


김미래 (b.1992)

 

2017        단국대학교 대학원 서양화전공 졸업

2014        단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7        Hard-Surface,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6        Squ-area, 관훈갤러리, 서울

 

단체전

2018        Allover, 하이트컬렉션, 서울

                 Pack - 팅커벨의 여정, , 공간사일삼, 서울

                 Binary Notation : 010101, 갤러리 이알디, 서울

                 POST-PROTOTYPE, 챕터투, 서울

                 봄과 봄 사이,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선 출발, 공간 시은, 전주

2017        낯선, 도착,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5        사물과 공간 전, gallery sedec, 서울

 

레지던시

2017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1기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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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you from_07, oil on canvas, 97×162cm, 2019

김창영 (b.1975)


2007       프렛 인스티튜트 M.F.A,브루클린, 뉴욕

2001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8       Where are you from, 아터테인, 서울

2015       김창영 개인전, 토포하우스, 서울

                그 어떤 것도 닮지 않은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아트스페이스 휴, 파주

2014       그 어떤 것도 닮지 않은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갤러리 신교, 서울

2011       Now in Color: Changyoung Kim, Gallery COOHAUS, 맨하튼, 뉴욕

2008       Into the Illusion-Dumbo Art Festival, 111 Front Street Galleries #265, 브루클린, 뉴욕

2007       Phenomenon-Thesis Show, Pratt Institute South Gallery, 브루클린, 뉴욕

 

단체전

2018      ART369, 아트 플레이스, 서울

              좋아서 하는 동네 예술잔치 : 옆집에 사는 예술가, 아트스페이스 휴, 파주     

2017     회화, 평면에 담긴 세상, 어울림미술관, 고양

2013     Invitational Art Exhibition, Jersey City Hall, 저지시티, 뉴저지

              Silent Auction of Art, Waterfall Gallery & Mansion, 맨하튼, 뉴욕

2012     Art & Lifestyle, waterfall Gallery & Mansion, 맨하튼, 뉴욕

              Dumbo Art Festival, 브루클린, 뉴욕

              Go Brooklyn Art, Open studio, 브루클린, 뉴욕

              The Land of Rising Sun, LMMHC, Bronx, NY

2011     NY+Korean Art=Get to be Friends, NYKulurist Collection, 맨하튼, 뉴욕

              Dumbo Arts Festival, 브루클린, 뉴욕

              Narratives of Line and Space, Maum Gallery, 맨하튼, 뉴욕

              Beautiful Art Exhibition: Roots, Glenpointe Hotel Marriott, Teaneck, 뉴저지

2010     Dumbo Arts Festival 2010, Open Studio, 브루클린, 뉴욕

              Plus One, Perry Rubenstein Gallery, 맨하튼, 뉴욕

2009     Dumbo Arts Festival, 브루클린, 뉴욕

              Spring Fever, Closter Art Studio, Closter, 뉴저지

2008     DREAM, Riverside Gallery, Hackensack, 뉴저지

             Illusion of shadows, World Culture Open Center, 맨하튼, 뉴욕

             Election 2008: The Square Foot Show, Art Gotham, 맨하튼, 뉴욕

             Open Studio Party by Chang Young Kim, 브루클린, 뉴욕

             Barack Obama Art Show: Hope, Rogue Space Chelsea, 맨하튼, 뉴욕

             Hope is Nowhere, Hope is Now Here, World Culture Open Center, 맨하튼, 뉴욕

             99 Art Fair, hpgrp Gallery, 맨하튼, 뉴욕

             Ten Artists, Gallery Xpose’, Englewood Cliffs, 뉴저지

2007    Summer Festival Art, ISE Cultural Foundation Gallery, 맨하튼, 뉴욕

2006    Annex Show, Annex Gallery, 맨하튼, 뉴욕

 

수상/레지던시

2019      예비 전속작가제 지원사업, 예술경영지원센터

2018      7회 종근당 예술지상 선정, ()한국메세나협회, 아트스페이스 휴, 종근당

2015-     +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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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ei no.5,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유화, 53×53cm, 2019


이희준 (b.1988)

 

2014        글라스고 예술대학 M.F.A 졸업 

2012        홍익대학교 회화과,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7        Emerald Skin, 이목화랑, 서울

                 The Speakers, 위켄드, 서울

2016        Interior nor Exterior: Prototype, 기고자, 서울

 

단체전

2019        코너스 1: 응답과 대응, 킵인터치, 서울 

                 덜어내기: Less is more, 소다미술관, 화성

                 팬텀시티, 세화미술관, 서울

                 Dear You Do This? FFFF It, 광산 현대미술창고, 광산 

                 기하학 단순함 너머, 뮤지엄 산, 원주

                 화랑미술제, 코엑스, 서울

2018        Motif, 학고재 갤러리, 서울

                 Let’s Make Together, 유니온 아트 페어, 서울 

2017        Pack, 문화비축기지, 서울

                 Land Play, 킵인터치, 서울

                 인사살롱, 미술세계 갤러리, 서울

2016        I DROGUM, 아큐레이리 미술관, 아큐레이리

2015        아지노모토: 가루양념, 노토일렛, 서울

                 COLOR ON CANVAS, Art247,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

                 Prehistoric Loom, 글라스고 오픈 하우스 프로젝트, 글라스고

                 Prehistoric Loom, 야다시민 갤러리, 나고야

                 Prehistoric Loom, 노토일렛, 서울

2014        MFA at CitizenM, 시티즌엠 호텔, 글라스고

                 Glasgow school of Art Master of Fine Art 졸업전시, 글루펙토리, 글라스고

                 MFA & Student Association Auction, 디아트스쿨, 글라스고

                 Tipping the line, 오큐파이 마이 타임 갤러리, 런던

                 Dear Green, ZK/U 프로젝트 스페이스, 베를린

2013        Word/Play, 그레이스 & 클락 퓌피 갤러리, 글라스고

                 The Independent Artists Fair(TIAF), 마일 엔드 아트 파빌리온, 런던

                 Black Cube Collective(BCC) Annual Show, 디 올드 엠뷸런스 디포, 에든버러

                 PRISMISM Transmission’s annual members show, 트랜스미션 갤러리, 글라스고

                 HOW MANY SHADES WOULD AN ARTIST PACK FOR HOLIDAYS?, 니코지아

                 GSA Interim show, 맥캔토시 뮤지엄, 글라스고

                 JAMIE, 올드 헤어드레서, 글라스고

2012        MFA Auction, 에스더블유쥐3, 글라스고

                 아시아프, 서울문화역사 284, 서울

2011        니가 지난 여름에, 구 화랑대 간이역사, 서울

                 아시아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전시, 홍익대학교, 서울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전시, 홍익대학교, 서울

 

전시 기획

2015        Beta Abstract, 노토일렛, 서울

                 아지노모토: 가루양념, 노토일렛, 서울

                 Prehistoric Loom, 노토일렛, 서울

2011        니가 지난 여름에, 구 화랑대 간이역사, 서울

 

수상/레지던시

2018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선정 및 소장, 과천

                최초예술지원 작품연구지원, 서울문화재단, 서울

2017       최초예술지원 전시지원, 서울문화재단, 서울

2016       Image & Essay, 미술세계, 서울

                New Look, 아트인컬처, 서울

2013       Neoterismoi Toumazou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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