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인터커넥터(Interconn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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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 휴에서는 유기체적 형태와 키네틱아트의 운동미학을 작품화하는 김형석의 전시회가 열립니다. 이번 개인전은 제1회 Holistic System(갤러리 보다, 1998), 제2회 Turning Point(한전프라자 갤러리, 2000)의 3부작 마지막 시리즈 전시이다. 이 3부작은 <세상의 모든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김형석의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이벤트적 조류와는 일정 거리를 둔 인생과 세계와 예술의 관계를 보다 유연하게 사색하는 전시공간으로 준비하였다.

- 전시 기간 : 2003. 8. 5(화)~2002. 8. 13(수)
- 전시 오픈 : 2003. 8. 5 (화) 오후 6시

시간 없는 운동 혹은 플라스틱 신비_가벼움의 미학 김형석의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밝은 색조와 가볍고 깔끔한 느낌의 키네틱 구조물을 보여준다. 관객은 잘 조직된 기계적 운동감과 형태와 색조를 부담 없이 유쾌하게 감상할 수 있다. 미적 요소를 살펴보면 공학 또는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과도한 과장이나 현란하지 않은 태도로 담아낸다(그는 한때 공학도였다). 또한 정서적으로는 직설적 표현보다는 보다 간접적이고 사려 깊은 태도를 견지하면서 잘 계획된 조형성을 보여준다. 정신적 측면에서는 세상의 만물이 어떤 식으로건(이해되건 이해되지 않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생명현상으로서 상호영향을 끼치며 작용한다는 원형적 사유을 권장한다. 그것은 부드럽고 섬세한 어찌 보면 유약한 감성을 지닌 김형석의 인간적 면모와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격렬한 감정의 고양보다는 찬찬히 살펴보고 관찰하게 하는 지적인 직관을 이끌어낸다. 작품의 소재가 매우 가벼운 플라스틱과 전동기, 약간의 전기재료로 이루어져있고 스프레이로 균일하게(따라서 무정하게) 채색된 밝은 중간색조의 색상은 날카로움이나 괴체감 혹은 웅장함과 관계하지 않는다. 무중력 혹은 아주 작은 중력의 상태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연상시키듯 가벼움의 미학을 키네틱아트와 결합한다. 움직임을 통해 하나의 고정된 관점과 상(근세 원근법의 체계를 와해시키는)을 해체하고 무수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키네틱아트의 특징이 나타난다. 김형석의 작업은 여러 갈래로 해석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 그의 작업이 기대고 있는 사유는 존재와 세계의 가벼움이라는 역설로, 혹은 유서 깊은 유기체적 세계 혹은 가이아 의 통속성으로서 비쳐지기도 한다. 사실 김형석의 작품은 전원을 꺼도, 운동이 멈추어도 본래 아주 작은 또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계획되어 있어서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의 작업에서 움직임은 하나의 암시로서 하나의 제스처로서 보여 진다.
하나의 작품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작업을 보자. 이 작업은 간략한 알레고리로써 힘을 겨루는 혹은 포옹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머리 위에 회전하는 조형체, 또한 그 두 인물을 둘러싸고 운동하는 물체들, 그 물체들은 아마도 별자리를 은유하거나 어떤 힘의 작용의 요소들을 나타낸다. 가는 녹색의 끈들이 팽팽한 힘으로 운동하며 다양한 위치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를 직접 연결한다. 그의 작업에는 직접적인 알레고리로 누구나 접근하기 용이한 작업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상호관계하는 것들, 상호작용하는 힘들을 즐겁게 보여주는 미덕이 있다.

다른 하나의 작품 벽면에 설치된 다른 작업을 보자. 검은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각진 혹은 다양한 면을 지닌 회전하는 기둥을 중심으로 인간형상의 물체들이 회전한다(이 기둥의 형태는 앞선 작품에서 두 인물을 에워싸고 운행하는 별자리들이 쌓여있는 형태이다). 이러한 회전에서 또한 다양한 실루엣과 그림자들이 이미지들을 만든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서 나올 듯한 그림자들의 스펙타클이 벽을 수놓는다. 인간의 형상을 한 물체들이 회전하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보다, 갑자기 인간의 형상을 한 것들이 하나의 별무리들로 별자리들로 보이기도 한다.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의 존재들과 형상들은 어찌보면 별이 폭발한 파편들이나 흔적들일 것이다. 우주공간을 춤을 추며 유영하는 존재와 힘을 은유한다. 지적 직관으로 다가가는 성실한 태도가 어는 지점에서 어는 시점에서 영적 깨달음이나 성찰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손으로 깍고 다듬고 마감하고 도색하고 전선과 전동기와 모터를 연결하는 소박한 기계공학과 조형적 시험을 연결하는 장인적 끈기와 섬세함의 이면에는 아마도 인간과 세계의 관계, 영성의 경계를 기웃거리던 근대 초기의 신비주의자의 선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김형석에게서 신비주의자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현학적 허구나 과장은 아니다.

또 다른 작품들 맞은 편 벽면에 설치된 연노랑의 작품은 위와 아래에 율동하는 사람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 운명의 저울을 떠올리는 추가 달려 위와 아래로 번갈아 움직이다. 이 추의 중앙에는 둥근 금속의 공이 왔다갔다 왕복운동을 한다. 이러한 왕복운동과 함께 위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형태가 운동감을 갖게 된다. 이 작품 또한 앞서의 작품들처럼 사람의 형상이 나오고 무언가 운명의 혹은 우주적 질서의 법칙이 상호작용하고 한 몸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벽면에 설치된 작은 작품은 유기적 형태의 바탕에 원뿔의 기둥이 위아래의 반대 방향으로 서 있다. 이 네 원뿔은 서로 연결되어 움직인다. 이러한 운동은 상승하고 하강하는 힘들의 교차와 대립과 상호 작용, 상호대립 하는 세계를 조형적으로 담아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는데, 이는 소재로서 사용한 플라스틱과 신비의 역설적 만남으로도 읽을 수 있다(작가가 인터커넥터라는 말을 만들었다기에 나는 플라스틱 신비 혹은 플라스틱 연금술이라는 기묘한 용어를 떠올렸다). 가벼움과는 또 다른 극으로서의 세계, 시간이 정지한 그러나 그러한 정지한 시간 속에 운동하는 것. 김형석의 이미지의 운동에 대한 해석은 시간이 사라진 연금술사의 작업장에서 주조되는 혹은 생성하는 사물을 떠올리며 연속하지 않으면서 영원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운명과 세계 운행의 상을 담아내는 것으로 본다. 아마도 이러한 과정은 멈춰버린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섬으로써 가벼움은 밝은 광채로 숨쉬는 공기를 변성시키고 그리고 그 속에서 운행하는 관계와 운동의 내밀성을 부여함으로써 시작한다. ■ 김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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