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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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길 바래요


<답장부탁드립니다>는 정철규 작가가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 연작의 새 작업들이다. 각자의 이름을 지우고 나눈 어렴풋한 이야기들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도록 작가는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반짝이는 색실로 수를 놓기 시작했다. 흩어진 이야기들은 눈물 자국이 되고, 글이 되고, 별이 되고, 빈 편지지가 되어 한 구절의 이름 하나씩을 갖게 되었다. 2020년 OCI미술관에서 전시한 정철규 작가의 44개의 실드로잉 작업 <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망각에 부치는 노래>(2004)의 정서를 은은하게 환기시켰다. <망각에 부치는 노래>는 루이즈 부르주아가 자신이 입었던 옷을 조각내고 다시 이어 붙여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함축한 작품이다. 정철규 작가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감춰진 남성 소수자들의 44개의 이야기를 짙은 양복천에 수놓았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해 얇아진 종이처럼 희미하게 남아있거나 서서히 지워져가는 이야기들은 어두운 천위에서 오래도록 반짝이게 되었다.


양복점에서 옷을 지어주는 재단사처럼
바느질(needlework)은 물질적 형태를 갖는 권위적인 작업 방식을 대신하여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용력과 유연함으로 많은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 작가들에게 선호되어 왔다. 다양한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 하나로 연결하는 패치워크 작업이나 루이즈 부르주아의 자아치유적 도구로서의 바느질, 모든 것을 감싸고 수용하는 김수자의 보따리가 그러하듯 말이다. 정철규 작가는 양복점에서 옷을 지어주는 재단사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불러들이는 이미지를 바느질이라는 여성적 상징물을 통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가 선택한 짙은 감색의 양복천은 가부장의 권위와 사회적 관념에 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어떠한 작업 방식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작가는 이후에도 <브라더 양복점>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마음 맞춤 재단사’를 자처하며 사회적으로 호명되지 못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수집하고 작업으로 지어나갔다. 5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을까. <답장부탁드립니다>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손바닥 위에 잠시 앉았다 사라지는 11월의 첫눈 같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백 여덟 번째 이별 편지에 대한 답장
전시는 17년간의 11월 달력을 수놓은 <59일을 기억하기 위한 장치_그날이 다시 돌아와도 그날은 그날이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로 시작된다. 2008년부터 2024년까지의 11월 달력을 연결하여 설치한 작업인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점은 이전의 양복천의 색과는 대치되는 분홍색 계열의 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복천의 어둡고 차분한 느낌과는 다르게 17점의 색감과 질감이 모두 달라 짐짓 밝고 경쾌한 한복천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전 회화 작업에서 수용과 거부를 동시에 나타내는 이중적 장치로 분홍색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양복천 작업 이후 이와 같은 소재적 변화는 다수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서사에서 비롯된 정서와 심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2024년부터 2008년까지 시간을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바닥에 놓여있는 설치 작업 <백 여덟 번째 이별 편지에 대한 답장1〉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인 소피 칼의 <잘 지내길 바래요>에 대한 108번째 답장이다. 소피 칼은 자신이 받은 이별 편지를 107명의 지인에게 보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달라고 부탁했고 다양한 형태로 돌아온 107개의 답장과 지인의 사진을 함께 전시했다. 정철규 작가는 2미터 남짓한 흰 천에 옅은 색연필로 편지의 내용을 적고 이를 여러 조각으로 자른 다음 다시 실로 꿰매었다. 찢어진 상처를 드러내며 누워있는 편지의 모습은 온기가 빠져나간 이불처럼 상실의 흔적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장의 천이 나란하게 걸려있는 <서성거리는 노크>는 2023년 갤러리2에서의 개인전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에 전시한 <닮아가는 벽>을 떠올리게 한다. 낡고 오래된 셔터에 앙상한 나무 그림자가 비친 모습을 옅은 색연필로 그린 작업인데 마치 창문 너머로 보는 풍경처럼 가까이에 있지만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듯 서늘한 공허함이 감돈다. <닮아가는 벽>은 창을 그리워하지만 가까이 갈 수 없고 <서성거리는 노크>의 차가운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정철규 작가는 <답장부탁드립니다>가 관계의 실패담을 고백하는 누군가의 방과 같은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의 지난 작업이 그래왔듯이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누군가의 마음이 작동되기를 바라고 그 마음이 작업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의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열어보는 편지 봉투 안에는 두 장의 편지지가 담겨있다. 한 장은 그때의 나에게 다른 한 장은 그때의 당신에게 마음으로 편지를 써본다. 잘 지내길 바란다고.


글_김현 큐레이터

촬영_스튜디오 독립

답장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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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규 개인전
답장부탁드립니다
2024.11.20-12.24


정철규 작가의 개인전 《답장부탁드립니다》는 관계의 실패담을 고백하는 누군가의 방을 펼쳐 놓은 것 같다. 벽에는 17년간의 11월 달력을 수놓은 손바느질 실드로잉 작품 17점이 나란히 걸려있고, 바닥에는 누군가에게 이별을 고하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색연필 드로잉으로 제작한 설치 작품이 뉘어져 있다. 작가는 이 전시가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읽어 내려가는 듯한 기분으로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정철규 작가는 2020년부터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2020~)는 인터뷰이가 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전달인터뷰’ 방식으로 실제(혹은 허구의) 남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양복 원단위에 반짝이는 색실을 사용해 작가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설치 작품으로 구현된다. 이 프로젝트는 《브라더 양복점》(2021~), 〈짝사랑 실험실〉(2022), 《구름이 되었다가, 진주가 되었다가,》(2023) 전시와 작품으로 이어지고 이번 아트스페이스 휴에서의 개인전 《답장부탁드립니다》로 연결된다.


설치 작품 〈백 여덟 번째 이별 편지에 대한 답장1〉은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전시한 소피 칼의 〈잘 지내길 바래요〉 작품에서 착안해 제작한 작품이다. 소피 칼은 그의 남자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편지를 받았고 이 편지를 107명의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편지를 해석하여 표현해 주기를 부탁했다. 이에 정철규 작가는 소피 칼이 이 이별 편지를 108번째로 보낸 사람으로 설정해 이별 편지를 표현했다. 곱씹고, 찢고, 다시 꿰매는 과정으로 제작한 편지는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시적으로 보여주며 추후 소피 칼에게 메일로 보낼 예정이다.


그 외에도 〈지금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와 〈서성거리는 노크〉등 천위에 수를 놓은 손바느질 실드로잉 작품이나 천위에 색연필로 옅게 드로잉하는 방식으로 정철규 작가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통용되는 수많은 관계의 생겨남과 사라짐의 쓸쓸한 흔적을 기록하고 기억하기를 시도한다. 정철규 작가는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또한 2018년 경기창작센터 입주를 시작으로 OCI미술관, 팔복예술공장,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을 거쳐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소리를 보여주마 3부_양아치, 오재우, 이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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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보여주마 3부
2024.10.25-11.14
양아치, 오재우, 이학승
2024.10.25(금) 18:00
퍼포먼스_Kayip+이강일


1. 양아치 <서울 좀비> 사운드 및 설치, 10분 30초, 2024
칠흑 같은 밤, 서울 좀비가 있다.
칠흑 같은 영화, 서울 좀비가 있다.
양아치 작가의 신작 <서울 좀비>는 제목과 크레딧을 제외하고 일체의 시각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영상, 사운드 작업으로 오로지 소리만으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일종의 실험 영화이다.


2. 오재우 <음소거 된 비명> 싱글채널 비디오, 16분, 2024
너의 주님께서 천사들에게 말씀하시길, ‘나는 땅 위에 대리자를 세울것이다’ 라고 하셨다. 천사들은 “그곳에서 혼란을 잃으키고, 피를 흘리는 자를 세우려 하시나이까? 저희는 찬양과 거룩함으로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라고 하였다. 주님께서 말씀 하시길,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노라.” 라고 하셨다. (바까라 30절)
오재우 작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하마스)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폭로한다. 팔레스타인 지인을 통해 현재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마주하게 된 작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이를 직면하기로 한다. 아버지를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구슬픈 목소리와 코란의 한 구절을 구송하는 팔레스타인인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잔혹한 현실과 오버랩되며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음소거된 비명>의 실상을 고발한다.


3. 이학승 <듣기평가> 사운드 및 설치, 23분, 2024
‘이들 중 누가, 이 사회에서, 정상 범주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학승 작가의 <듣기 평가>는 청력이 서로 다른 3명의 참가자가 듣기 평가에 참가하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 작업이다. 3명의 참가자는 같은 소리를 듣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참가들의 청력보다는 서로 다른 경험과 정서가 소리를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소리의 역할과 기능을 연구하고 예술과 비예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4. Kayip+이강일, WGWG ㅇㄱㅇㄱ, 오디오 비디오 퍼포먼스, 25분, 2024
WGWG ㅇㄱㅇㄱ는 사회적 담론의 교차점을 청각적·시각적 풍경으로 재구성한 메타적 사고 실험이다.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지닌 5명의 AI 토론자들은 각자의 성향을 반영해 AI가 선정한 주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며, 그들의 발언은 실시간으로 파라미터화되어 음향적 패턴을 형성한다. 두 명의 인간 퍼포머는 이 소리의 흐름에 개입해 함께 질감을 조율하고, 이를 통해 AI의 발언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동시에 소리로 변환되어 병치된다. 정치적 대립과 대화의 소음이 상호작용하는 순간들은 해체되며 예측할 수 없는 질서를 만들어내며 끝없는 의견 교환 속에서 점차 흐려지는 방향성을 통해, 정보의 과잉과 소통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현대적 소통의 역설을 은유한다.


*본 사업은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추진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4년 시각예술창작산실에 선정된 사업입니다.

소리를 보여주마 2부_김준, 민성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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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보여주마 2부
2024.9.27-10.17
김준, 민성홍
2024.9.27(금) 18:00
퍼포먼스_콜렉티브 푸실


1. 김준 <마지막 시간, 다시 찾은 공간> 목재, 종이, 스피커, 앰프, 다채널 사운드, 가변설치, 2024
김준 작가는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채집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소리 환경을 만든다. <마지막 시간, 다시 찾은 공간>은 나무 기둥 형태의 스피커에서 자연의 소리와 그에 화답하는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강원도 평창에 있는 자택에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자연의 소리와 이에 응답한 피아노 연주를 담았다. 파주의 자연 풍경에 평창의 소리가 전해지며 소리에 담긴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들인다.


2. 민성홍 <난청지역:안테나 새> 나무 팔레트, 바퀴, 안테나, 세라믹, 라디오, 가변설치, 2024
민성홍 작가는 수집한 오브제를 변형하여 신체적 형태를 부여한 근작에 크리스탈 라디오를 결합한 <순환하는 신체_안테나 새>를 선보인다. 크리스탈 라디오는 게르마늄 라디오 또는 광석 라디오로 불리며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전파를 소리로 변환하는 장치이다. 민성홍 작가는 그간 개인과 집단, 사회의 관계망 안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힘과 욕망의 생성과 변형, 이동을 다루는 작업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신작은 보이지 않는 신호는 송수신하는 안테나라는 오브제를 사용하여 작가가 그동안 견지한 작업 개념을 소리로 연결한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다.


3. 콜렉티브 푸실(양혜리, 이경민, 임지연, 한수지), One Clear Day
9월 27일(금) 오후 6시에는 콜렉티브 푸실(양혜리, 이경민, 임지연, 한수지)의 사운드 퍼포먼스 One Clear Day 공연이 펼쳐진다. One Clear Day는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과 글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소리와 시각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퍼포먼스이다. 음악, 설치, 퍼포먼스, 아티스트북이 결합된 형태로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변화시키고 관객이 작품에 감응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3부는 10월 25일부터 11월 14일까지 양아치, 오재우, 이학승 작가가 참여하며 10월 25일(금) 카입+이강일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본 사업은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추진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4년 시각예술창작산실에 선정된 사업입니다.

소리를 보여주마 1부 퍼포먼스_이상현, 성능경,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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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보여주마 1부
2024.8.23-9.12
김구림, 박이소, 백남준, 이상현
2024.8.28(수) 18:00
퍼포먼스_이상현, 성능경, 윤진섭

소리를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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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 휴가 2003년 홍대 앞에 문을 연 지 어느새 20년이 지났습니다. 전시장이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을 만났고 새로운 미술의 형식에 도전하는 작가들을 지지하며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트스페이스 휴는 지난 1년간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며 숨을 고른 후에 이번 재개관전을 준비했습니다. <소리를 보여주마>는 음악과 미술의 결합을 시도한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1963)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실험적이며 혁신적인 현대미술가들의 아이디어와 실천이 소리, 사운드, 음악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작동하는지 그 전개 과정을 3부로 나누어 구성하였습니다. 동시에 사운드 아트의 초기 작업부터 다양한 미디어를 수용하며 발전한 작업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트스페이스 휴와 함께 협업했던 청년 작가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확고한 자기 예술세계를 구축한 기성세대로서 우리 미술계에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트스페이스 휴 또한 한국의 대안공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으며 이제 새로운 비전과 기획으로 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미래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 김노암


소리를 보여주마
2024.8.23.-11.14
오프닝: 2024.8.28(수) 18:00


아트스페이스 휴
경기도 파주시 산남로 37-9
*합정역 1번 출구에서 2200번 승차-북센후문에서 하차 후 도보로 10분


1부 2024.8.23-9.12
김구림, 박이소, 백남준, 이상현
2024.8.28(수) 18:00
퍼포먼스_성능경+윤진섭


2부 2024.9.27-10.17
김준, 민성홍
2024.9.27(금) 18:00
퍼포먼스_콜렉티브 푸실


3부 2024.10.25-11.14
양아치, 오재우, 이학승
2024.10.25(금) 18:00
퍼포먼스_Kayip+이강일


주최
아트스페이스 휴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한옥 건축자재 재활용은행, 종로구, 북촌에이치알씨(주)


본 사업은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추진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4년 시각예술창작산실에 선정된 사업입니다.

알잘딱깔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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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 릴레이전
알잘딱깔센
박현순 개인전


2022.11.30-12.27
아트스페이스 휴


작년 이맘때 박현순 작가의 포트폴리오에는 거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 같은 그림들이 있었다. 최소한의 색과 형태만을 남기고 회화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을 대부분 제거한, 그렸다기보다는 비우고자 하는 그림이었다. 작가는 이에 대해 가장 사실적이고 솔직한 ‘회화’ 그 자체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이번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작업은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작가는 MZ세대의 말장난 같은 가벼운 유머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회화의 솔직함을 재정의한 듯 보였다. 기성세대의 아재개그와 비슷하지만 이미지와 텍스트가 결합된 형태의 ‘짤’은 MZ세대에게는 매우 익숙한 표현 방식이다. 1초, 2초 만에 직관적으로 읽히고 쉽게 소비되는 짤은 작가가 생산하고 영원히 고착되어야 하는 회화 이미지와는 상충되는 개념이다. 이 극적인 관계를 오가며 살아가야 하는 MZ세대 회화 작가로서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이미지의 희화화, 즉 짤을 박제하고 제목(텍스트)을 덧붙여 유의미성과 시간성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짤을 즐기듯이 가볍게 그의 회화와 농담을 유희한다면 그가 추구하는 회화의 진솔함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_김현 큐레이터


월-금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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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김형주 개인전


2022.10.28 - 11.17
아트스페이스 휴


죽은 고라니가 유령처럼 되돌아 왔다


“작은 잔디마당에 잡초는 제거대상이라 생각했습니다. 뽑고 또 뽑고 그래도 다음날이면 계속 피어납니다. 전문가에게 문의를 하면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행위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만큼 잡초와의 폭력적인 태도는 사유까지 이어져 오히려 불청객으로 생각되었던 잡초들이 원래 이 공간의 주인이고, 나와 잔디가 불청객이라는 태도의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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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죽어 있는 고라니의 사체를 보았다. 먹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날 작가는 일기를 썼다. 주변의 농사 짓는 사람들이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의 피해가 크자 농약을 사방에 뿌려 놓았고 고라니는 그것을 먹고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농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 검정비닐을 밭에 덮어 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필요한 농작물만 햇빛을 받고 나머지 잡초들은 죽어버리는 것이다.


작품 속 이미지는 검은 채색과 농촌의 다양한 사물과 풍경을 지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농촌이고 이곳에서 당신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농산물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다. 검은 비닐 속에 고라니가 누워 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채소가 자란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검은 패턴이 움직인다. 검은 패턴 사이로 배추와 파와 무가 줄을 맞춰 행진하는 환영을 부르고 있다.


작가는 고라니의 죽음과 검정비닐을 연결시킨다. 검정비닐은 자연과 정반대의 상징이다. 검정비닐은 불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검정비닐 없이는 농사를 짓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고라니의 사체를 발견할 때 작가의 손에는 채소를 담은 검정비닐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작가는 주변의 현실, 자연과 인간의 욕망, 노동이 결합된 풍경을 단순한 형태와 채색으로 표현한다. 조형 예술의 미적 세계란 순진무구한 무균실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다종다양한 사물과 욕망이 뒤섞이고 융합되어 오염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배양된다. 땅 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검은 석유가 검은 비닐이 되어 대지의 표면을 덮는다. 그러나 그 쓸모란 농산물을 잘 자라게 하는데 유용하지만 동시에 쓸모를 다한 폐비닐은 곳곳에 쌓여 대지 오염의 원인이 되어 버린다. 현실을 구성하는 자연과 사물은 쓰기에 따라서 쓸모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실용적 쓸모란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검은 패턴은 어떤 예술적 허세도 없다. 작가가 농작물을 표현한 이미지이지만 달리 보면 대지의 오염을 표현한 검은 오일의 인덱스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진실을 읽어내는 통찰의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이미지를 평범한 풍경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단순화한 플랫한 이미지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관리하는 현실을 재현하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작가는 2016년 경기도 파주로 작업실을 옮긴 후 자연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치열한 약육강식과 시장과 경제가 지배하는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작가가 알던 자연과는 완전히 다른 자연이다. 산도 사라지고 사람들의 경제적 이윤에 의해 자연이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농작물과 밭을 묘사한 이미지는 결코 평화로운 자연과의 조화와 화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류는 문명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쉼 없이 자연을 인위적 용도에 맞춰 가공하고 변형해 왔다. 그러면서 자연의 이상을 꿈꾸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꿈꿔 온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란 인류가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조작한 기괴한 망상에 다름 아니다.


농산물과 잡초는 인위적 구분일 뿐이다. 본질적으로는 자연 생태계를 이루는 식물의 여러 종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기능과 이익을 제공하는 식물은 유익한 농작물이 되고 그렇지 못한 식물은 이름 없는 잡초가 되어버린다. 야생동물과 잡초들은 인간과 경쟁한다. 농사란 곧 잡초와의 경쟁이고 전쟁이다. 자연의 생명력은 무섭도록 질기고 인간의 영역을 침입한다. 인간의 상상을 벗어난 자연의 생식력은 공포스럽다. 더 나아가 경이롭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이미지는 농작물과 잡초가 모두 형태만 다를 뿐 동일한 질감과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패턴화 되고 양식화된 기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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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고향은 인천이다. 인천은 수출입항으로서 한국 사회의 산업화를 견인한 공단들이 도시를 형성해 왔다. 산업화의 한 가운데에서 성장한 작가의 경험과 생활 조건은 그 기본 구조가 농산물을 생산하는 논과 밭이라는 인류의 2차 산업혁명의 현장에도 적용된다. 공장이 밀집한 공단의 생태계는 자연과 인간의 노동을 극한까지 쥐어짜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세계는 자본 증식의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은 채 내달린다. 인생의 신비한 비밀은 단순화되고 산술적 통계와 확률의 시스템 속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 생산량에 도달하기 위해 정교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세속화되었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생태환경은 초현실적 긴장의 극단까지 치닫는다.


시각적으로 잘 조형된 이미지가 사실은 약육강식과 자연과 문명이 투쟁하는 무서운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순박한 이들의 삶은 사실 치열한 투쟁 속에 비극적 폭력의 일상으로 촘촘하게 조직된 농촌이다. 우리를 평화롭게 치유하는 시골 농촌은 완전한 허구이며 판타지이다. 흔히 낭만적 풍경으로 묘사되어 온 논과 밭은 인간이 자연을 정교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개발하고 착취하는 공장이다.


본질적 현실이란 결국 평화롭고 행복한 망상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입장과 여건에 따라서 바라보는 상대적(비본질적) 현실을 현상할 뿐이다. 본질적 현실이란 감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상을 넘어서 초극한 어떤 것이다. 작가는 생존과 투쟁의 현장에 잠시 서서 자연과 문명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심미적 특이점을 모색한다. 그렇게 현실과 쓸모의 세계 안에서 작가는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일상적 노동과 합리적 사유를 가로질러 더 큰 쓸모를 사유한다.


궁극적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존재자들은 서로 의존해 있고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사물들에 의존하고 있고, 대부분은 그것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는 삶을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보았지만 사실 문제 해결의 과정이 역설적으로 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낳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의 복잡성과 예측불허 속에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이 뒤엉킨 수많은 사건을 경험하고 이 경험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한다.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이란 가장 비천한 현실을 동반하며 펼쳐진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한 기술과 문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의 복수라는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유년기와 성장기의 경험과 현재 화가로서의 삶, 산업사회와 첨단정보사회의 축과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는 농업의 현실이라는 축이 기묘하게 뒤엉켜 있다. 작가는 회화 언어를 통해 자연의 비극과 인류의 잔혹한 현실을 담담하게 증언하며 삶과 살림의 바닥을 깊이 파고 있다.


김노암(미술평론가)


월-금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Phantom Island_Orange desert and a windowless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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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 릴레이전
Phantom Island_Orange desert and a windowless house
김자연 개인전


2022.9.23 - 10.20
아트스페이스 휴


김자연 작가는 직접 쓴 글을 바탕으로 회화 시리즈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소설 『Phantom Island(유령섬)』 중 2번째 장 ‘오렌지 색 사막’을 중점으로 한 신작으로 구성되었다. 소설은 작가가 경험한 사적 순간들 가운데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일부분을 남기고, 허구적 요소를 가미해 창조한 ‘Phantom Island(유령섬)’이라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이 곳을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실제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섬’이라 말한다. 있음과 없음, 그 경계 사이 오묘한 위치는 작가에게 있음에도 없어야 할 것으로 치부되는, 없는 존재마냥 투명해지는 것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 그 중 쉽사리 부정되고 감추어지도록 요구되는 우울, 무기력과 같은 종류의 감정들에 중점을 두고 그림을 그린다.


김자연 작가는 대형 캔버스에 채도가 낮고 짙은 색을 사용해 자신의 심상을 담은 유령섬의 풍경들을 그려왔다. 무의식과 직관의 움직임을 따라 나무와 숲이 무성한 자연의 이미지를 그려내던 작가는 이번 시리즈에서 보다 작은 화면에 의자 위에 놓인 ‘오브제’와 같은 인체 모습으로 회화의 대상을 이동시킨다. 숲의 나무 형상에 빗대어 사람의 인영을 그리던 그는 풍경 속으로 감추었던 사람을 <앉아있는_object> 연작과 <앉아있는_얼굴> 등 보다 더 전면에 드러내어 보이기를 시도하는데, 이러한 직접적인 인물 표현은 그 등장 자체로 표현적인 것이 된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도리어 그러한 상태의 존재-있음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작업에서 인물들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몸을 동그랗게 말아 한껏 웅크린 자세를 취하거나 기대어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널브러지다가도, 어느새 쭉 뻗은 팔다리와 드러누운 포즈 등 자신만의 자세를 잡은 모양새를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각 인물의 태도는 작가가 설정한 ‘의자’의 의미와 관계되는데, 안락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적인 속박을 뜻하는 의자는 그림에서 인물을 더욱 관람 대상으로서의 위치에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풍경에 빗대어 자신의 감정을 에둘러 가는 방법으로 표현하던 작가는 이제 돌아가지 않고 그를 드러내 직시하는 편을 택했다. 전시를 통해 작가는 이러한 개인 내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도록 만드는 공간인 ‘창이 없는 집’으로 관람자를 초대한다. 유령섬의 숲과 사막을 걸어 마침내 들어선 집은 오롯이 당신만의 공간이니, ‘열린 문 틈 사이’를 지나 당도한 이 곳에서 안락과 사색의 의자에 앉아보시길. 글_최다빈 인턴 큐레이터


월-금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수상한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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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 개인전
수상한 움직임


2022.8.12-9.15
아트스페이스 휴


꿈인가. 한 시간 동안이나 나는 스토리보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상, 단편소설 「실화」(1939) 중에서


그림을 목소리에 비유한다면 안준영의 작업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는, 차분하면서 다소 메마른 거친 목소리를 연상케 한다. 말의 내용보다는 말의 뉘앙스나 히스테릭하고도 지적인 말투에 사로잡히게 될법한. 작가는 불안, 신경증, 소외 등 몇 가지 감정의 키워드로 오랜 시간동안 펜 드로잉 작업에 몰두해왔다. 불면증과 관련한 신체적, 심리적 피로와 강박을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비유하거나(2011)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위해 신체를 해부학적 방식으로 표현하고(2017), 예민한 정신과 대립되는 무력한 신체의 결핍과 갈등이 터져 나오는(2019) 등 작가는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내적 불안으로부터 기인한 여러 신체적 현상들을 작업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전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감정에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그 끝이 자기연민으로 귀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작가는 보편적인 소재인 신체, 좀 더 자세하게는 정신이 작동시키는 변화하는 신체에 주목한다.

작가는 최근 몇 년 간 파편적으로 다루어온 신체의 제한적 표현에서 벗어나 신체와 대상의 결합이나 유기적인 변화를 통해 신체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데 이는 작년 아트스페이스 휴 기획전 <어떤 사람>에 선보인 연작에 유사하게 적용된다. 총 17점의 펜 드로잉 연작은 일체의 간격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어 한 폭의 동양화처럼 길게 뻗어있다. 시점이 이동하며 심장의 형상에서 복슬복슬한 털로 뒤덮인 단단한 열매로, 다시 폭포가 흐르는 녹음 진 숲으로 변한다. 각각의 드로잉은 경계에 그려져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독립하기도 하면서 관계를 맺거나 회피하면서 신체의 유기적인 흐름과 같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의 흐름을 포착하기위해 작가는 가늘고 섬세한 펜의 사용을 고집하는데 덕분에 엄청난 양의 노동과 시간이 쌓여 만든 선들의 응집력은 작업의 밀도를 더욱 단단하고 강인하게 만든다.

이후에 선보인 <수역> 연작에서는 동물의 얼굴-특히 눈이 변이된-과 수면에 반사된 일그러진 모습을 병치하여 정신과 신체에 상응하는 새로운 대립항을 설정한다. 수면의 일정한 영역이라는 뜻의 ‘수역’에 늪이나 수렁을 뜻하는 morass라는 부제를 덧붙인 까닭에 해당 전시의 제목 <썰물이 없음>의 의미가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정지된 상태를 지시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밀려들어오고 있는 일반적이지 않은 정체적 상황은 변이와 왜곡을 불러일으켜 현실에는 없는 변종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10점의 펜 드로잉 신작과 애니메이션 작가 박선엽과 협업한 3점의 영상 작업을 통해 정체된 정서적 상태와 변화하는 신체와의 충돌을 자연의 이치, 우주의 순환 원리에 적용하여 보다 확장된 개념의 객체화를 시도한다. “내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방식을 더 명확히 보고자 하는 목적위에 있으며 또 그 감정이 얼마나 변화하기 쉬운 연약한 기반위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불안을 시각화하기 위한 방식적 차원의 접근에서 벗어나 불안의 원인과 본질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체를 다루는 작가의 진중한 태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글_김현 큐레이터


월-금 10:00-18:00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111, 3층
031-955-1595


2022 아트허브 평론지원 프로젝트
▼미술평론가 이선영 선생님의 글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daljin.com/?WS=33&BC=cv&CNO=342&DNO=20259&PHPSESSID=1a19b4be79c78d8280f0b9bcd6ca397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