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철종 개인전

접촉과 금기와 유희

1. 곽철종의 작업을 접하고 일순간 나는 어떤 몽상에 빠져들었다. 어떤 몽상이냐 하면 딱히 형용사나 명사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러니까 내 의식의 흐름이 명료한 문장의 형태나 구성을 갖추기 이전에 느꼈던 그런 경험의 형상이었다. 일정한 합의나 약호를 익히고 따르기 전에 아주 어린시절 스쳤고 만졌고 부비던 그런 감촉이었다. 나는 그의 작업을 익히 들어온 관객참여 또는 상호작용성 등으로 상투화하지 않겠다. 그것은 보통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듯하면서도 모호한 꿈과 같았던 시절의 촉감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비록 인조모를 사용하였으나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인공적 접촉만으로도 싶게 몽상에 빠질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듬성듬성 털이 엉킨 누런 똥개를 껴안고 쓰다듬고 사랑하였던 어린이가 다시 현재를 살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뚜렷한 현실로 다가온 몽상이었다. 그 몽상의 한 켠에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유년기에 대한 동경이 숨죽이고 있다.

몽상은 흔히 우리에게 어떤 직관적 예감이나 유사신비체험을 가능케 하는데, 물질적 존재감과 형이하학적 표면질감이 감각을 예민하게 변화시키고 고양시킨다. 그러한 섬세해진 감각을 각성시키는 그의 작업은 단순한 구성과 직설적 화법으로 꾸며본 몽상적 이미지를 만드는 듯 하다. 비록 접촉자가 쉽게 몽상에 빠지는 기질이든 아니든.    

2. 곽철종의 체취가 물씬 나는 인조모의 표면을 스치고 그 위에 음영으로 형상화되는 어떤 이미지들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시각적 또는 촉각적 또는 후각적 인상을 이룬다. 그것은 또한 누군가 만지길 욕구한다. 동시에 그러한 욕구는 곽철종의 욕구이기도 하다. 누군가 만져주길 원한다. 쓰다듬길 원한다. 자신이 혹은 타인이. 직접적인 신체의 접촉이 그의 작업을 매개로 구현된다. 관객은 손으로 쓸고 혹은 그리고 문지른다. 그리고 지우고 만지고 문지르는 행위를 통해 무의식적 차원에서 욕구하는 접촉을 은유한다. 그는 텅빈 허공을 횡단하는 욕망을 자신의 주제로 삼아 무한한 채움을 반복한다. 비록 그러한 욕망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실패를 예견한 것이지만 하나의 의미 있는 퍼포먼스로서 또는 자신을 열어놓는 제스처로서 지속된다.  

현대미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금기와의 위험한 유희라고 할 수 있다. 미술작품은 권위 있는 예술의 후광을 두르고 손을 댈 수 없는 거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관객들의 동경의 대상이거나 관조(또는 관광)의 대상이었다. 작품과 관객 사이의 이러한 관습적 규칙은 하나의 금기로 작동하였고 그것을 어기는 것은 교양 없는 천박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곽철종의 작업은 이러한 오래된 관행과 전통적인 관계성을 역전시키고, 또한 일종의 관습적 금기를 교정하거나 해체하고 새로운 감상 또는 이해의 지평을 여는 ‘이상적 관객’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희는 언제나 금기와 대결하면서 그 진가를 또는 그 흥미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곽철종은 자신의 유희에 동참하자며 관객에게 호소하는 자세를 취한다. 무겁지 않게 그리고 부담 없이 새로운 관계성을 여는 과정을 제안하는 것이다.          

3. 한편 인조모를 사용한 그의 작업은 혹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죽은 짐승의 털가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성긴 털가죽에 우리는 손가락으로 혹은 전기청소기를 들이대고 무언가를 그린다. 꽃, 사람의 얼굴 뭐 그런 것들이다. 그저 끄적거린다. 마치 죽음의 향취가 나는 털가죽 위에 어떤 형상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아주 오래 전 이름 모를 야생의 원시인이 추위와 땡볕을 혹은 위험을 피했던 바로 그 털가죽이 용도 폐기되어 어느 익명의 장소에서 사람들의 유희를 위한 기계가 된다. 죽음을 풍기는 그러나 유쾌한 유희성을 띤 털가죽이 그의 작업의 중요한 은유의 장소이고 장치가 된다. 곽철종의 개인적 은유로서의 털가죽은 그것이 천연모든 또는 인조모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슬렁 어슬렁 배회하는 그의 체취가 영웅적 예술행위를 기리는 제단 혹은 이미 죽어버린 예술행위의 사체를 보관하는 검은 미술전시장을 슬쩍 슬쩍 유희한다. 물론 관객의 상상이 곽철종의 은유 또는 나의 몽상과 마주칠지도 모르는 이곳을, 씨뿌리고 탄생하고 성장하고 쇠락하고 사멸하고마는 어떤 감성들의 접촉이 이 검은 전시장을 생동하게 만든다. 이러한 생동 가운데 유동하는 벽화가 탄생했다 사라지고 털가죽의 찰나적인 물질감이 검은 공간의 물질감과 융합된다. 곽철종이 때려잡은 짐승의 털가죽이 하나의 예술의 은유라면 또 유희의 토포스라면 또는 만남의 장, 또는 욕망을 채우는 영원한 순환운동의 현장이라면 다소 지나친 비약일까? 몽상은 마침표를 모른다. 영원한 동경과 유희가 공전하는 몽상일수록 더욱 그렇다.

- 전시 일정 : 2004년 6월 27일(일) ~ 7월 3일(토)

- 전시 오픈 : 6월 27일(일) P.M.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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