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정 개인전 - To be tamed 길들여지기 II

일그러진 메타포

투명한 벽에 혹은 유리창에 무언가에 밀려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렇게 일그러진 얼굴이 무한히 재생산되고 무수히 재현된다. 찌그러지고 뒤틀리고 짓눌린 다수의 이미지들이 본래의 얼굴을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언제가 보았던 사진 속의 피난민 혹은 가난한 이민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에 밀린 어린 아이들의 얼굴이 낡은 버스 유리창에 짓눌린 모습이었다. 그것은 사진에 박힌 삶의 고통에 짓눌린 인간의 절규거나 고발이었다. 아마도 윤현정의 작업도 이러한 느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무언가에 쫒기며 정착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유랑하는 사람들. 평범한 현대인의 삶이 어쩌면 잘 조직되고 세련된 시스템에 정교하게 짜맞춰진 모습을 투사한 듯 하다.        

변형된 얼굴의 무한배열은 마조사디스트의 매혹적인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전형으로 만든다. 얼굴은 존재의 확증이고 독립적 인격체의 메타포이다. 그러나 어떤 물리적 압력은 불안과 공포로 얼룩진 혹은 의미 없는 표정으로 자아를 구성하던 강건한 뼈와 근육과 힘줄을 무질서하게 흐트러뜨리고 파편화하였다. 해체된 검은 얼굴의 파편들이 흩어지고 또 줄줄이 겹쳐진다. 그것은 물리적 압력이나 실은 현대사회가 지닌 복잡성과 특이성의 구조가 발휘하는 힘의 그림자이다. 윤현정의 작업은 일그러진 메타포로 그 힘을 재현한다. 얼굴이미지의 뒤틀림으로 세계와의 화해가 역설적으로 투영된다.

현대세계는 불완전하며 완전한 인간의 얼굴을 부정하는 세계로 나타난다. 현대사회를 사는 개인들은 자의반 타의반 그 사회가 지향하는 이념과 이상적 전형을 닮아가게 되는데, 실상 그러한 닮아감은 하나의 순화이고 독립적 개체로서 삶의 경험을 규격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윤현정의 이미지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주체성의 혼란과 혼돈은 그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실존주의의 일면과 함께 묵시적 세계관을 반영하는데, 성공적인 현대사회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위협하는 점증하는 불안과 공포를 형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사회가 빚어내는 신화는 짓눌린 얼굴들은 자기얼굴을 잃어버리고 끝없이 자기의 참모습을 찾아 살해를 저지르고는 살해한 자의 얼굴가죽을 벗기어 써보는 이 비참한 살해극의 비극적 운명을 그리는 듯 하다. 아마도 이 운명의 참혹함은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에 이제는 자신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망각해버린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얼굴을 손에서 놓쳐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찾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영원히 그 의미를 망각해버리는 무의미, 무화되버리는 것, 그것이 윤현정이 진단하는 현대인의 운명이다. 윤현정을 둘러싼 현대사회는 무한 증식하고 파괴적인 권능을 확대하는 레비아탄으로서 본래의 얼굴을 망각시키는 폭군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달짝지근하고 유쾌한 이미지로 다른 현실을 다른 허상을 만들기도 한다. 혹은 폭군의 이미지는 한 때 우리가 기대고 믿을 만한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것은 질서이고 권위이기도 하며 바로 나와 우리를 낳은 바로 그 세계이다. 윤현정의 일그러진 얼굴의 메타포는 이렇게 자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과 혼돈과 격렬한 내면의 풍경화이기도 하다. 굉장한 소음과 함께 자아의 이미지는 익명의 벽에 부딪치고 찌그러지고 파열한다. 이런 고통스런 퍼포먼스의 흔적들이 윤현정의 작업의 특이성을 만들어낸다.

얼굴은 자아가 새겨낸 문신이고 지문이다. 얼굴은 타자를 구별해내기도 하고 동시에 자아를 낳는 장소이다. 거울에 반사된 또는 영사되는 얼굴은 자아를 관통하고 지나야만 형태를 갖추는 존재의 운동, 또는 타자를 관통해야만 주체의 신화를 엮는 존재의 생성을 은유한다. 윤현정의 일그러진 이미지는 타자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태도가 내재되는 그리고 내밀화하여 친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록 부드럽거나 따듯한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한여름 우리를 오싹하게 만드는 호러 영화에 등장할 만한 공포와 두려움의 이미지로 각인되지만, 그것은 여전히 타자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오래된 주체의 나약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김기용(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

- 일시 : 7월 6일(화) ~ 7월 20일(화)

- 오픈 : 7월 6일(화) P.M.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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