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발전소 기획공모 01 - 파야 “환타지”

현대사진의 흐름은 과거 예술사진으로서 분투하던 생존의 상투성으로부터 일정정도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김상호의 사진작업은 오늘 한국의 사진가들에게서 이러한 흐름을 읽는데 하나의 예를 제공한다.

김상호의 사진작업은 일반적인 사진이미지에 공상이미지를 덧입혀 영화적 혹은 연극적 이미지로 보인다. 현실을 재현하는 혹은 움직이는 시간을 정지시킨 평면의 사진 이미지에 점토를 입히고 채색하여 마치 셔터를 누르기 전 가면이나 기타 소품을 이용한 모델이나 대상을 구성한 듯 하다. 사진의 형식파괴와 혹은 형식의 융합이 나타나는데, 거기에 유쾌함을 첨가한다. 그의 유쾌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음울한 사진이미지는 사진을 보며 동시에 다른 이미지 혹은 헛것이라는 사물의 이미지가 교차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유령들이 출몰하는 세계로서 바라보며 현실세계에 덧입혀진 허구의식 혹은 현실에 간섭하는 보이지 않는 비현실들 혹은 어떤 힘이나 존재들을 기록한다. 그럼으로써 보다 엄격한 형식적 규율과 원칙으로부터 이탈하는 몽상적인 심미적 운동을 만들고, 일상생활의 기록사진을 패러디하여 무의식적 욕망이나 관계를 형상화한다.    

그의 작업은 예술이나 기록이라는 보다 제도화한 이념에 무임승차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사물들과 세계를 살펴보고 어떤 형태로든 사진가로서 취할 수 있는 제스처와 태도를 지향하는 성실한 이미지생산자의 미덕을 담고 있다.

- 전시 기간 : 2003년 9월 24일 (수) ~ 2003년 10월 2일(목) (전시기간중 무휴)

- 오  프  닝 : 2003년 9월 27일 (토) 오후 6시

환상 경험의 실제성; 후기자본주의 시대 작가의 정체성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경험은 자기 자신의 내면적 정언명제들, 즉 구체적 현실에 기반 한 삶의 윤리성과 관련된 사건의 다양한 양태들을 반성(reflection)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 의미의 원인이 된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의 상징적 가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호 작업의 출발은 일상의 경험들을 개인적인 코드들을 통해 상징화시킨다. 이런 과정은 예술작품 생산자인 작가의 입장이나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2차적인 코드 찾기가 가능해지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예술적 행위와 연결시킬 수 있다. 그런데 김상호의 작품에서 이런 2차적인 행위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가능한 것은, 그의 인식의 그물을 통해 그의 이미지들이 확장되어 가는 방식이 매체의 특성을 넘어 상당히 개인적이지만 그러나 본질적인 언급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한국의 기존의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기준들은 시대의 변화를 떠나 여전히 변치 않는 모더니즘적인 척도들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들 눈앞에 존재하는 예술작품으로부터 모더니즘의 기본적인 구조틀인 중심과 주변, 내부와 외부, 원인과 결과 등등의 관계의 구조 속에서 작품 감상과 이해의 실마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모더니즘은 매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특성을 기반으로 예술작품의 존재론적 혹은 인식론적 가치들의 유의미성을 연장시키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미국의 비평가 로잘린 크라우스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예술영역의 확장 같은 것이 아니라 매체의 물질적 특성 자체를 존재론적 사유의 중심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아직도 여전히 인과론적 세계관 내에서 평가되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 이것이 모더니즘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모더니즘 회화의 특성을 ‘자기회고적’이라 규정한다. 즉 예술작품이 반성적이라는 칸트의 정의를 빌려 미술의 존재론적 특성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통성의 문제를 모더니즘 회화의 중요한 존재론적 조건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회화 혹은 이미지에서도 회고적인 특성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런 회고적인 특성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방향은 인간의 경험이 시간을 통해 지각해 가는 인식 영역의 확대가 아니라 다분히 개인적인 환상과 더욱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고, 모더니즘에서 회자되는 의미의 내면화가 아니라 의미를 다양하게 발산할 가능성이 있는 이미지 기호들의 표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호의 최근작 Fantasy 시리즈는 그의 이전 작품 “Art Complex” 와 “Comedy & Enigma”의 매체적 확장이자 개념적인 변화이다. 김상호는 그의 초기 작품 시리즈에서 인위적으로 상황을 연출하여 사진을 찍는 작업, 즉 연출사진을 생산해냈다. 이들 사진에서 관객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젊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볼 수 있을법한 가정적인 상황들이 이미지로 형상화 되어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Comedy & Enigma” 시리즈에서는 사회적 이슈와 관계있을 듯한 상황들에 관한 암시 혹은 우리가 소위 ‘부조리’ 개념을 언급 때 연상이 가능한 부조화에 근거한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망과 관련된 행위들의 본질적인 한계를 표면화 시켜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리즈 작품에서 이미지들은 너무 은밀한 형식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대면하는 관객들은 작가의 제목에서처럼 희극적인 요소들을 더욱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희극적으로 제시되는 상황은 단지 희극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긍정과 부정의 가치판단이 불가능한 상황들과 관련되어 관객들에게 또 다른 여운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런 여운들은 “Art Complex”에서 좀더 개인적인 미시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있다 - 여기서 확장이란 말을 쓴 것은 김상호라는 작가가 예술적 수용의 범위를 축소시켰다는 의미에서의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개인화 되었지만 그 개인화 된 이미지들에서 관객들은 작가가 사용하는 좀더 보편적인 미학적 언어들을 통해 구체적인 부조리 상황을 목격할 수 있고 동시에 작가의 좀더 성숙해진 미학적인 관점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자신의 작품에서 미학적 엣센스를 찾으려 노력하는 작가의 ‘현실인식’과 관련되어 그의 예술적 여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작가들은 기존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정착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것이 주관적인 언어 속에 함몰되어 있으면 관객은 이들 작가들의 작품에서 일상의 식상함과 진부성을 발견할 뿐이다.
 
       김상호는 그가 연출한 “Art Complex” 시리즈 이미지들의 형상들 속에서 각각의 독립적인 상황들을 개별적 존재에 대한 시점과 조합된 이미지 시점의 이중적인 구조로 통합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의 이미지 창조자로서의 시도는 한 개인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진행방향일 것이다. 즉 일상적인 삶과 예술적 세계 간의 화합 점을 찾고 또 자신의 예술적 발전 과정의 추이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을 지속해야 하는 존재로서의 조건들 속에서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을 창조해내야 하는 정신적인 고뇌는 어떤 면에서 정말로 인간적 본질에 속하는 삶의 방향성과 목표를 설정하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존재론적인 성찰은 “Art Complex”를 넘어 더욱 개인적인 영역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 Fantasy 시리즈는 제목에서도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의 개인적 생각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사실 작가적인 경력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들의 초기 작품에서 예술에 대해 자신의 인간적인 총체성에 기반 한 반응보다는 추상적으로 떠도는 예술개념을 어떻게 형상화 시키는가에 대한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은 제대로 된 창작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김상호 역시 그의 초기 작품 “Art Complex”, “Comedy & Enigma”에서 존재간의 관계, 의미의 소통 가능성, 부조리한 상황과 개별 존재간의 커뮤니케이션 가능성 등등과 같이 어느 정도는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테제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자신의 예술의 주제를 개인적인 존재론적 증거들과 관계된 토픽들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미 찍혀진 사진 이미지들의 인물들의 모습 위에 고무찰흙을 붙여 그 자신의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자신의 상상력을 각인시킨다.  
        김상호는 “Fantasy” 시리즈에서 사진을 완전히 다른 매체를 통해 분해한다거나 리터치를 통해 변형시키는 물리적인 기술들이 아니라 이미지 위에 고무 찰흙을 붙여 이미지 자체의 속성을 변화시킨다. 사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이율배반적인 행위 일수도 있을 것이다. 즉 사진 이미지는 그 존재의 정당성을 기록성, 독일의 예술이론가 벤야민에 따르면 ‘증거 기능’ 속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도큐멘터리적인 속성이 제거되는 순간 사진의 구조는 허물어지기 쉬워진다.

        김상호의 Fantasy 시리즈 작품에서 사진에 각인된 본래의 인물들은 사진의 구조 속으로 숨어버리고 작가의 의도에 의해 변화된(transformed) 다른 형상들이 전면에 보여 진다. 물론 그의 새로운 형상들은 초기 작품의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을 확대한 것으로, 예전 작품에서는 본래 그렇게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던 요소적인 것들을 주제로 확대한 것이다. 여기서 관객은 마치 디즈니랜드를 활보하면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존재들을 보게 된다. 벚나무 앞의 어머니와 아기, 강아지 혹은 해변가의 여자 어린이 등은 의인화된 동물 같은 형상으로 재탄생 한다. 작가의 이런 어린아이들의 무도회 같은 인위적 터치가 왜 미학적 적절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는 작가가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단순히 이미지의 변형만을 시도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김상호는 그런 이미지들을 통해 자신이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을 자신의 현재의 행위 속에서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해석은 다시 예전의 희미한 기억과 더불어 어린시절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관점과 혼합된다. 그렇다고 그는 해석을 위해 이미지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즉 과장된 작업으로 예술적 범주가 유지하고 있어야 할 의미의 영역을 희석시켜 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효과만을 위해 내용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고, 장엄한 구조나 형식적인 탁월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차원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상호의 이런 행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고립된 개인과, 그 고립된 개인들이 만들어 가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사건들의 현상적인 양태들(phenomenological aspects)에 관한 언급이고, 그런 것을 통해 또 다른 종류의 예술세계를 창조해 가는 과정에 있는 작가의 인간적인 희망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관객은 그의 작품과 작업 행위가 가지고 있는 진보에 대한 느낌, 의미가 탄생될 수 있는 새로운 환경, 예술이 가능한 차원의 탐색 등등에 대한 예술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의 화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작가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고 예술에 대한 비전이다. 김상호의 작품은 관객들의 비전을 담보로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상호의 작품을 보면서 삶과 예술의 가치 유무 혹은 어떤 가치의 우월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삶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관객은 그의 작품이 예술적인 역사의 지평을 향해 열려있고 또한 미학적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용도(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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