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명 개인전

꿈과 기억, 소리의 미학적 움직임에 관한 작은 실험들

우리는 꿈을 꾼다. 왜 꿈을 꾸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지적은 꿈은 수면을 지속시키기 위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꿈을 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수면을 지속시킬 수 없다. 원래 인간은 기본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러한 민감한 환경에서 소리나 다른 외부적 정보를 이미지로 치환하고 꿈이라는 연속적인 환영에 빠짐으로써 수면을 지속시키게 되는 것이다.

꿈을 지속시킨다는 것은 일종의 재현representation임과 동시에 이미지의 연속이다. 이미지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프레임은 기억이라는 저장소 안에 존재한다. 우리는 수면 중에 이 프레임의 조합을 통해 일종의 연속적인 영상을 자아라는 스크린 위에 투사를 하는 것이다. 이때 프레임의 조합은 연속성continuity이라는 일관된 메커니즘을 향해 움직여 나간다. (이 연속성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의 단위로 발전하는 사건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꿈에서 영사된 이미지들은 재현되어 있지만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기억의 파편이며 숨겨진 감성의 조각들을 찾아낸다. 그렇게 재 조합된 기억의 단편들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현존하는 사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꿈을 관조하는 일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되는 - 연속적인 일관성을 부여하는 - 의식적 기재를 찾아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수면의 지속을 위해서 꿈이 존재한다면, 의식의 지속을 위해 존재하는 프레임은 없을까? 그것은 바로 그 시대를 규정하는 ‘재현의 방식’들이며 기억을 모사하는 ‘기술적인 과정’들이 아닐까? 그래서 미디어의 기술적 과정들은 어쩌면 인간의 시대적 감성과 기억을 결정하는 미학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예술의 미학적 질문과 실험들이 영상 프레임이 갖는 작은 소리와 움직임들과 결부된 감성적 여행이 된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김현명의 작품들은 이러한 기억과 소리, 인상들이 지니는 작은 영상적 실험들 위로 펼쳐진다. 의식의 연속적인 메커니즘위로 드러나는 작은 이미지의 파편들은 꿈과 소리, 기억의 단편을 재조합하며 익숙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경한 공감각을 부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몇 가지 실험적인 영상언어와 이미지의 요소들에 관한 고찰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첫째는 프레임의 현존이다. 영상은 초당 30개의 독립된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프레임은 영상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면서도 전혀 지각적인 요소이다. 즉, 움직임이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착시이며 왜곡과 변주가 가능한 데이터인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우리가 보는 사물들을 강한 프레임의 현존 위에 위치시킨다. 우리의 많은 인식의 저변인 프레임이라는 영상적 기술과정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의식적인 인식 역시 하나의 연속적인 프레임의 투사라는 미디어적 관점을 추적한다.

둘째는 소리와 공간, 시간에 관한 디지털적인 변형이다. 디지털이란 무엇인가? 디지털은 컴퓨터의 비트로 이루어진 데이터이다. 그의 작업에서는 소리와 공간은 디지털로 변형되고 왜곡된다. 우리의 인상은 우리의 지각 안에서 주관적으로 변형되어 재해석되어 저장된다. 객관적인 재현 역시 하나의 환영이며 인상에 머무른다. 그의 작품들의 시간과 소리들은 이러한 왜곡된 재현의 방식들에 대한 회화적 전통들을 암시하거나 변주한다. 프레임 안에 철저하게 형식적으로 완결된 구도와 짜임새는 이러한 미학 전통들과 기술적 과정들의 비판적인 계승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공감각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미학의 디지털적인 재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리 역시 꿈의 주요한 일부이며 시각적 요소이기도 하다는 기본적인 지각요소들을 이 작품들 안에서 쉽게 확인한다. 우리는 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며 사물에 인상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소리 역시 영상의 일부이며 감성적 언어의 일부인 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은 우리의 심리적인 감성을 형성하는 데이터의 일부이며 이는 곧바로 우리가 ‘이미지’라고 부르는 것의 현대적인 (혹은 디지털인) 해석이다.

셋째는 대중적 감성과 팝 이미지의 차용이다. 미디어와 영상작품들은 최근 새로운 영역 확장을 향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 하나는 현학적인 개념미술과의 연관성, 혹은 퍼포먼스 적인 연관들이다. 또 하나는 바로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대중들과의 상호소통적인interactive 요소의 확장이다.  오히려 이러한 상호소통적인 요소들은 영상 실험들의 새로운 도전이며 커뮤니케이션도구로의 영상으로써 그의 작품을 위치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영상언어는 민주화된 미학적 언어로써 작가들의 감성을 쉽게 명료하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영상 미디어의 색체감과 숫자 언어와의 기호적 관련들은 끊임없이 현실이 지니고 있는 기호적인 도상성icon 들을 암시하고 있다.

넷째는 주변부적인 감성적 오브젝트에 관한 관심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많은 오브젝트들은 독특한 거리와 버려진 사물들, 골목들에 대한 오마쥬임과 동시에 미쟝센에 대한 오마쥬이기도 하다. 영화의 미쟝센에서 보여지는 긴장과 움직임을 잡아내고 미술적으로 리터치한다. 특히 개념적인 행위와 서구미술의 과시적인 암시보다는 직설적이고 주변부적인 오브젝트의 그림자에 주목한다. 이것은 제3세계적인 한국미술에 대한 주체적인 영상 미디어 언어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브젝트는 항상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들이며 우리를 결정하는 것들 이기도 하다. 우리는 많은 통속성과 주류적인 감성을 통해 일관된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지만, 실지로 우리의 감성은 이러한 아시아적 오브젝트들과의 연관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의미부여’를 함으로써 비로소 의식위로 솟아 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오브젝트들은 버려진 것들에 대한 향수이며 다분히 영화적 미쟝센의 문법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현실의 기억들은 이미지의 영역 안에서 재 조합되고 일관된 연속적인 재현을 위해 많은 부분들이 디지털적인 기술 과정 안에 흡수되고 있다. 프레임의 움직임들은 영상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로, 거리로, 우리의 의식 위로 떠오르고 있는 참이다. 영상 언어들과 미학적인 실험들이 살아있는 우리의 의식과의 긴장관계를 통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김현명의 영상은 우리가 매일 꾸는 꿈, 소리, 인상들을 재 조합하여 또 다른 삶의 미학적인 차원을 재현해내고 있다. 이것들은 영상적인 기술적 재현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사물이다. 즉, 이 작품들의 영상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미디어-사물인 것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 이러한 사물들을 직면하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그것을 해석을 가하기 보다는 우리의 감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관련을 맺고 있다. 다만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김현명의 작은 실험적인 영상물들을 통해, 우리는 움직임과 프레임의 영상적인 공간 안에서 또 다른 감성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상상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자아의 연속성을 위해 의식의 상태로 매일 꾸는 꿈이라고 해두면 좋을 것 같다.

- 전시기간 : 2004년 9월 18일(토) ~ 9월 24일(금)
- 전시 오픈 : 9월 18일 PM_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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