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경 개인전 ‘ 코 끝에 서다’

성(性)의 경이(驚異)를 모은 사전

김서경의 작업 과정을 보고 그녀(혹은 그)의 활동을 옆에서 종종 지켜봤지만, 나는 어떤 첨가제를 어느 시점에 그(혹은 그녀)의 세계에 뿌려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한 난감함은 여전한데, 다만 나는 그녀(혹은 그)가 일종의 성적 유희와 환상에서 자기 세계의 어떤 출구를 찾은 듯하다는 정도만을 알아챘을 뿐이다. 흔히들 성-쾌락-미시적 권력-언설 등으로 이어지고 순환하는 연관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혹은 그녀)의 표현 혹은 성性담론을 위한 어떤 성性백과사전이 있을 것이라 추측해볼 뿐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참조할 그녀(혹은 그)의 사전에 몇 가지 항목들을 찾아보았다. 이것은 순전히 표면적으로는 제설절충식의 수집벽에 근거하여 어떠한 논리적 연관도 방기한 그래서 심지어 무책임할 정도의 항목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혹은 그녀)의 성적 비약에 쓰임새가 있을 법한 몇 개의 계단으로서 첨부되어야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가 내 손을 이끌었다. 굳이 야곱의 사다리와 비유하는 성장의 중력에 끊어져버린 탯줄이라는 존재의 밧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나는 주변에서 수집 가능한 조각들을 끌어다 이리저리 퍼즐을 맞춰본다. 어째든 그녀(혹은 그)의 성세계에 근접하는 지도를 만드는 것은 애초에 포기한 목표였기에 다음의 글쓰기는 한결 가볍다. (부연하자면 중간 중간의 페이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과도한 상상의 비약을 조절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2쪽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올 3월 카메라폰 수입과 판매를 금지한 데 대해 일부 각료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카메라폰 사용이 금지된 건 이를 통해 여성의 사진이 은밀히 유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여성의 맨얼굴 사진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카메라폰이 확산된 뒤 여성의 얼굴 사진 등을 함부로 찍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다. 실제로 지난 7월에는 결혼식장에서 여성 하객이 카메라폰에 찍힌 것과 관련, 폭력사태가 일어나 적잖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 여대생은 친구 사진을 카메라폰으로 찍은 뒤 인터넷에 올렸다 퇴학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카메라폰으로 찍은 듯한 성폭행 동영상까지 인터넷에 나돌아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종교계 지도자들이 지난 10월 “카메라폰이야말로 악과 음란을 퍼뜨리는 주범”이라는 ‘파트와(율령)’를 내린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통상, 재정, 내무부 장관 등 사우디아라비아 각료들은 “카메라폰 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파드국왕에게 규제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카메라폰은 TV나 인터넷 같은 필수품이 됐기에 이를 금지하기보다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쳐야한다”는 것이다.(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 중) / 11쪽/ “마담”, “너는 아직 나를 잘 모르는군. 나는 내가 잔인하다는 걸 인정해-그 말에 네가 그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내게 잔인해질 권리가 주어진 것 아닌가? 욕망하는 자는 남자이지. 여성은 그 대상이고, 이것이 여성이 지닌 유일한 이점이야. 결정적인 이점이지…”(모피를 입은 비너스 p.163) / 102쪽/ 돼지의 교미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기타는 그 광경을 보면서 꽤 성적 흥분을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육탄 돌격이라는 옛날 말이 떠올랐을 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래에 깔린 돼지는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봐도 밑에 깔린 돼지가 쾌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명백히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고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발정기의 광경이라 하기엔 너무 처참한 아수라장이다.(게르마늄의 밤 p12) / 103쪽 / 드디어 나는 여자라는 성의 메카니즘을 한꺼번에 깨달아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자각했다. 여자는 살아있는 동물이었다… 성의 한계는 언젠가는 끝난다는데 있다. 촉수가 폭발해버리면 남근은 권력의지를 잃고 부드러워지며 그것으로 끝이다. 뭐야. 종교와 다를 바 없잖아.(게르마늄의 밤 p.69) / 156쪽 / 성서적 전승에 나오는 인류의 타락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아는 자연은 썩은 것, 섹스도 썩은 것, 섹스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여자는 더 썩은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왜 아담과 이브에게 금지되어야 했던가요? 그것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인류는 삶의 조건에 동참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멍청한 아이처럼 살고 있을 테지요. 결국 여자가 이 세상에 삶을 일군 겁니다.(신화의 힘 p.103) / 158쪽 / 성sexuality은 애초부터 욕심 사나운 자기만의 성장과는 다르다. 성행위는 종의 차원에서 보면 성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개체의 차원에서 보면 사치이다….동물에게 생식행위는 어느 순간 가능성의 극단에 이른 에너지의 원천을 갑작스럽게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기회가 된다. 그 낭비는 종의 성장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며 순간적으로 보면 개인의 실행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경우 그 소비(성행위)는 파괴의 모든 가능한 형태들을 수반하며 재산의 탕진-육체의 탕진-을 부르고 최종적으로는 죽음이라는 비합리적인 사치 또는 과잉과 결합한다.(저주의 몫 p.76) / 183쪽 / 사회들의 생존 자체도 비생산적인 소모 규모를 비중 있게 늘릴 때만 가능하다. 바타이유의 소모 개념은 에로티시즘에 대한 자신의 고뇌 또는 개인적 경험과 일치하며, 아버지의 인색함과 이성적인 태도에 억눌린 나머지 낭비를 희구하는 아들의 경험과 일치하고, 정신분석의 어떤 소재들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회현상들, 정치 현상들, 경제 현상들, 미학적인 현상들을 밝혀주는 개념이다. 즉 사치, 도박, 공연, 종교예식들, 그리고 생식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벗어난 성행위, 예술, 좁은 의미의 시詩 등은 모두 다 비생산적인 소모의 양상들이다. (저주의 몫 p. 17) / 255쪽 / 칸트의 용어를 쓰자면 여자가 병적인 쾌락을 구현하고 있는 한, 특정한 환상의 틀 속에 들어가 있는 한, 여자는 남자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위협의 진정한 크기는 우리가 환상을 ‘가로지를traverse’ 때, 환상 공간의 조화로움이 히스테리적 파멸에 의해 깨질 때 드러난다. 다시 말해 요부에 관한 한 실제로 위협적인 것은 그녀가 남자들에게 운명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순수’하고 병적이지 않은 주체의 경우를 보여준다는데 있다. 여자가 이 시점에 이를 때 남자에게는 오직 두 가지 태도만이 남는다. 그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그녀를 거부하여 상상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정체성을 회복하거나 아니면 징후로서의 여자와 동일화하여 자멸적인 태도로 자신의 운명을 맞이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삐딱하게 보기 pp. 135-136) / 303쪽 / 내가 “여고생”을 그림의 소재로 선택한 건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야. 나는 단지 성숙되어 있지 않은 여고생의 깔끔한 성기가 좋을 뿐이지. 물론 대한민국 모든 여고생들의 성기가 그렇게 깨끗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성적 경험이 없을 테고. 아저씨들은 그녀들의 그 “처음”같은 느낌을 갈구하고 있지 않나 싶어. 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아저씨들은 그녀들에게서 그 “처음”같은 느낌을 사고 “보상”해주고 있지. 그게 뭐 잘못된 거지? …(중간생략)…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여고생들의 경제활동을 규제하고 있는 이 땅의 도덕과 법은 그렇게 자신만만한가? 그녀들도 핸드폰을 가져야 하고, ‘이쁜 것’이 최고가치인 사회에서 그녀들도 이쁜 옷과 액세서리를 사야하는데 어떻게 하나? 가진 거라곤 ‘풋풋한 몸뚱아리’ 밖에 없으니… 그녀들이 그녀들의 몸을 가지고 ‘알바’를 하든 말든 그것을 규제할 ‘도덕’이 지금 우리사회에 존재하나? 티 없이 깨끗하고 팽팽한 피부,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은 듯한 핑크빛의 유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골격과 음모, 처음인 듯 한 성기를 난 그리고 싶어.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여고생”을 그리지. 나는 솔직해지고 싶어. (화가 최경태) / 322쪽 / 마광수 : 한국에는 음성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성 문화, 또는 매매춘 문화가 있는데 여기에는 그걸 가리고 싶어 하는 이상한 도덕주의가 밑에 깔려 있다. 음란한 사회가 도덕주의를 가장하고 있다고나 할까? 음란한 사회일수록 도덕주의를 내세운다. 당신의 그런 지적은 우리로선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는 매춘으로서의 성은 자유로우면서 문화전반에는 도덕주의가 팽배해 있다. 여기에 대해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진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하나무라 : 일본이라고 별다를 건 없다. 그건 마찬가지다. 마광수 : 물론 어디나 그럴 것이다. 하나무라 : 대체로 도덕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치고 더럽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정치가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마광수 : 나는 이른바 모랄 테러리즘에 의한 피해의식이 많다….(게르마늄의 밤 p.199) / 543쪽/ 포르노는 본래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프랑스절대왕정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더로서 발명되었다.(포르노의 역사 중) / 598쪽 /콘돔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이다. 원래는 임신 방지용이 아니라 매독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8세기까지 매독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던 콘돔은 점차 카사노바의 말처럼 “건전한 성교를 아무근심 없이”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콘돔은 양 창자 혹은 어피(魚皮)로 만들어 졌으며, 몇몇 전문 도매상에서는 물론 사창가에서도 거래가 이루어졌다.(성의 역사 p.310) / 809쪽 / 원래는 질외사정을 뜻하던 오나니즘(onanism 수음手淫)은 성서의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오난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오난은 자신의 형수와 성관계를 갖은 후 자신의 정액을 땅바닥에 쏟아버림으로써 야훼의 노여움을 산다. 오난은 유태인의 관습인 죽은 형의 부인에게 아이를 낳게 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이 오난의 이야기는 오난의 죄악이 수음이 아니라, 관습의 위반이란 사실을 반증한다.(몸 쾌락 에로티시즘 p.17) / 925쪽 / 인간만이 자신들의 성을 에로틱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에로티시즘과 단순한 성행위는 엄격히 구별해야한다. 에로티시즘은 생식이나 자식에 대한 배려와 같은 자연 본래의 목적과는 별개인, 일종의 심리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섹슈얼리티는 생물학적 개념이고 에로티시즘은 심리학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몸 쾌락 에로티시즘 p.20) / 1001쪽 / 필루메나란 창녀는 애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왜 긴 편지를 써서 날 괴롭히지? 50개의 금화가 필요해. 편지는 필요 없어. 날 사랑하면 돈을 내. 나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면 더 이상 괴롭히지 마. 잘 있어.”(성의 역사 p.94) 김노암(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

- 전시 일정 : 12. 23. 목 ~ 1. 12. 수

Post a Comment
*Required
*Required (Never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