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외출중’

“신데렐라는 외출 중”
최근 여성의 이미지는 기존의 이미지처럼 사회적 조건에 의해 객관적으로 재현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당당함을 표현하는 자신감 넘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이렇듯 남성 중심의 여성 이미지에 대한 현상은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들어서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여성이 더 이상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지니고 강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재 사회적으로 일반화되어 퍼지는 ‘나쁜 여자 신드롬’과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하나의 트렌드 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착한 여자는 하늘나라로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라는 문구처럼 여성에게 좀 더 자유롭고 당당해 질수 있는 기회가 제공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콩쥐, 백설공주, 신데렐라 같은 착한여자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여성의 이미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자 이시대의 진정한 나쁜 여자들이 착한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을 포기 하거나 무시해 버리고 있는지. 어쩌면 또 다른 모습의 여성 신드롬과 외모지상주의가 더욱더 변모 되어 통념적이었던 착한여자의 이미지는 계속 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것은 모든 T.V.광고에서 또는 여성의 삶과 사랑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또한 보편적 현상인 것처럼 일반 사람들의 삶에 매우 깊이 관련이 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이미지가 대상화된 것을 보고 즐기는 관객이 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상화된 이미지를 동경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자들은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당당하지만 사랑받기위해 아름다운 미소를 배워야 하며, 성공했지만 이상적인 미의 기준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현대의 여성인 것이다.

착한여자여 신데렐라가 되자
여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두 가지 여성상이 떠오른다.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전형적인 여성으로서 살다 왕자를 만나는 신데렐라와 이러한 삶이 아니라고 외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 로라가 그것이다. 다소곳한 미소를 머금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모든 것을 이해하고 희생하는 신데렐라는 현대의 나쁜 여자들에겐 너무나 무기력한 인생인 것이다. 우리 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인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찾아 떠난 로라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현대 여성의 삶이 추구하는 모습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조건 자신에게 희생을 요구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다음의 상황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도 없고 보상도 요구하지 않은 체, 무조건 집을 나온 로라 역시도 답답한 착한 여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신데렐라를 생각해 보자. 동화 속 신데렐라는 착한여자의 대표주자다. 착하기 때문에 멋진 왕자를 만났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착해서 왕자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일 것이다. 신데렐라에게도 원하는 삶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부와 명예를 가진 왕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며 신데렐라에게 있어 그 꿈은 이루어 진 것이다. 이모든 꿈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묵묵히 기다리는 착한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전략이 있었다. 자신의 어렵고 힘겨운 인생을 바꾸기 위해 계모의 말에 반항하고 왕자님을 만나러 나왔고 또한 왕자의 모든 부탁을 거절하고 12시라는 통금시간을 지키며 신발하나를 남긴 체 아쉬움을 남기고 왕자 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전략적인 삶인가?
이렇듯 신데렐라는 가만히 앉아서 왕자를 기다리지 않았다. 자신이 찾아 나선 것이며 그렇기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원하는 삶을 이루어낸 신데렐라야 말로 이시대의 나쁜 여성의 전형인 것이다. 착한여자들이여 솔직한 신데렐라가 되자
자신의 꿈을 위해 여성이 가진 아름다움을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었던 신데렐라가 되자는 것이다. 그것이 여자를 옭아매는 여성성이라 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아니라고 해도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과 아름다워지고 싶은 소망은 여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지 애써 버리지 말자. ‘B사감과 레브레터’의 B사감처럼 스스로를 억압하여 정신 착란에 빠지느니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 모든 성공과 자신을 위해 진정한 나쁜 여자가 되는 길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보편적 생각이나 이미지를 바꾼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필요하다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쁜 여자들이여 당당한 것은 최고의 가치이다. 하지만 가끔은 여자로서의 전략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쁜 여자의 당당함으로 얻어낸 사회적 성공만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기만족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여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싶다. 여성의 사회적 성공만이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난 진정한 여성이라고 할 수 없고 또한 여성에게 있어 버릴 수 없는 것 사랑받기를 원하며 이상적 미의 기준을 위해 어떠한 목적을 동반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한심한 여성상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이라고 결정지어졌다면 그것을 구하는 것이 이시대의 진정한 여성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들이 좀 더 솔직하게 전략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길 원하다. 그것이 남자를 누르고 성공을 하는 이시대의 나쁜 여자가 되었든 미소를 짓고 희생과 아름다움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착한 여자가 되었든 자신의 발견을 주저하지 말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 찾아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완성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저마다 자의적인 기준이 있다고 한다. 그 기준으로 세상을 두 편으로 나누는 이분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들 일상의 모든 면에서 자리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둘로 나누어 바라본다고 한다.
세상을 반으로 나누어 생각의 넓이를 축소시키는 태도는 자신의 존재가 세상 안에서 날개를 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편협한 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세상 안에서의 고착되어진 자신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착한 여자, 나쁜 여자라는 이분법으로는 여러 인간의 모든 속성을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해 본다.  독립 큐레이터  이수현.

- 전시기간 : 2005.03.02~ 3.12
- Openig :2005. 3. 2. pm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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