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Clash -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

“Media Clash 매체/충돌”

오늘날 대안공간이 맞닥뜨린 조건은 지난날 대안공간이 시작했을 무렵과 판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처럼 기존의 미술계 바깥에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대안공간이라는 ‘형식’ 이상을 보여 주는 것, 즉 내용의 측면에서 ‘대안’의 성격을 조금 더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트스페이스 휴>는 특히 가파르게 변화하는 매체의 환경을 이에 따라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현실의 자락에 주목하고자 한다. 매체가 난무할수록 현실이 말라붙는 역설적인 상황을 짚어보고, 매체가 정신없이 쏟아내는 정보와 기호에 파묻혀 세상의 길을 잃었을 지라도 어떻게 잃었는지 추적해 보는 것이다.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

새로운 천년을 맞을 즈음, 많은 죽음이 예언됐다. 주체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념, 예술, 역사 등등, 수많은 순례자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 가운데 특히, 역사의 죽음은 근대성modernity과 관련해 생각해 볼만하다. 왜냐하면 ‘시간’ 개념과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근대성을 가장 일찍 감지했던 보들레르는, 흥미롭게도 어떤 개념보다 시간을 끌어들인다. 언뜻 충돌할 것만 같은 ‘순간’과 ‘영원’의 결합이야말로, 근대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근대’modern는 말뜻 그대로 ‘항상 지금’이라는 것, 무엇 때문에 이 시간 형용사를 명사로 만들어, 순간과 영원을 동거시켰을까. 하기야, 날로 바뀌는 패션의 ‘유행’처럼, 항상 새것이 넘실댄다면, 단지 상품뿐만 아니라 삶도 인간도 관계도 예술도, 매일같이 유행을 쫓아서 바뀌어야 한다면, 이해하기 곤란한 결합은 아니리라. 마치 요지경처럼 순간순간 시점이 바뀔 때마다 급작스레 이미지가 바뀌는 것처럼, 또한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광장 이편저편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는 것처럼, 항상 바뀐다면야, 덧붙여 바뀜들에 목적도 없다면야, 변화무쌍한 순간들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되자,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시간, 시제 없는 시대가 연출될 수밖에. 이제부터, 흐르지 않는 시간, 멈춰 버린 역사, 언제나 현재라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이때부터 현대인의 고질적인 시간강박이 생겨난다. 어쩐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항상 같은 것 같다는 것. 이 같은 테마는 여러 판본으로 온갖 장르에서 되풀이된다. 항상 새롭다면서, 기묘한 동일성의 논리가 관철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 같은 ‘손해’를 만회하려는 듯, 항상 충격적인 사건만 쫓아다닌다. “그들의 대화에서는 ‘대’라는 형용사가 자주 사용된다. 놀랄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무언가 기대할 만한 대상을 갈구하기 때문이다.”(다자이 오사무) 결국,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지루한 일상 역시, 항상 충격적인 사건만 고대하는 현대인의 순진한 욕망 역시, 동일성이 주무르는 현실의 양면인 셈이다. 게다가, 개인의 ‘시간’만 그런 게 아니다. 사회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어제의 모습이 오늘날 나타나고, 오늘의 얼굴에서 엊그제 흔적이 드러난다. 이러다 보니, 일종의 시간의 역설이 발생한다. 동시대에 여러 시간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손쉽게 확인된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같은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이는 1960년대에, 어떤 이는 1980년대에, 어떤 이는 2010년대에,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시대를 발판으로 삼아서 다른 시간들과 다른 사람들을 풍경으로만 응시할 뿐이다.
이렇듯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은 시간의 문제를 함축하는 얼굴에 주목한다. 얼굴이란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창문 같은 것이다. 이 창문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떠한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얼굴들을 모아 놓으면, 인간군상이 펼쳐지면서, 마치 점이 선을 이루고 형을 만드는 것처럼, 사회의 얼개가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오늘날 시간은 길을 잃는다. 옛날처럼 무엇인가 공유할 만한 것을 나눠 갖지 못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했던 얼개는 얼개가 되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얄궂게도 이 같은 양상은 일상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얼굴에다 흔적을 남겨둔다. 시간이 길을 잃는 것처럼, 인간은 개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다 똑같아 지는 것이다.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며 시작했던 근대적 문명이 아니었던가. 김상우 (아트스페이스 휴 큐레이터)

- 전시일정 : 2006.4. 8 ~ 2006.4. 22
- 초대일시 : 2006.4. 8(토) pm 06:00

책임기획 : 김상우 (아트스페이스 휴 큐레이터)

참여작가 : 강홍구, 김옥선, 김윤섭, 김정환, 김지연, 노순택, 박강훈, 박경주, 신혜선, 안세홍, 이상엽, 이현우, 인효진, 임선영, 장미라, 전종대, Area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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