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되고 살이되는….. 이해민선 개인전

핑크빛 통통한 돼지들이 예쁘게 늘어서있다. 에로틱하기까지 한 뽀얀 핑크빛 피부를 가진 돼지들은 너무나 먹음직한데다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훈련이라도 받듯이 잘 정렬된 핑크빛 돼지들은 에로틱한 핑크빛을 다른 동물들에게 강요한다. 다른 동물들은 그들의 색을 잃어버리고, 돼지들이 어떤 메타포처럼 던져준 핑크색 옷들을 입고 벽에 애처롭게 붙어있다. 역시 잘 정렬된 핑크동물들은 그들이 어떤 동물이던 간에 핑크빛 메타포에 의해 돼지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이 핑크동물들은 제 머리마저 거세당하고 멸치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거참 이상한 모습을 하고서 그들은 너무나도 불편하게 벽에 억지로 붙어있다.  멸치는 멸치대로 어이가 없다. 제 몸이 잘린 채 핑크색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동물들과 억지로 끼워 맞춰진 형태는 종교인들이 그토록 저주를 퍼부어대는 유전공학의 산물인 듯싶다. 원래의 제 몸과 머리가 잘려진 기괴한 합체동물들은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말이 없고 벽에 붙어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을 사열시킨 미치광이(?) 과학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멸치대가리가 붙여진 핑크색 동물들이 더 귀여운 것도 아니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맛이 더 좋은 것도 아닐 테니 어떤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이 실험이 행해진 것은 아닌가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실험을 한 것일까?

관념적인 이미지의 충돌 실험 - (어긋난 사랑의 소실점에서 만난 그들)

왜 돼지와 멸치인가? 그리고 정체불명의 멸치핑크합성동물은 무엇인가?
핑크색 돼지와 멸치국물 우려내는 영상, 멸치대가리와 결합된 핑크색 동물들의 어울리지 않는 모임은 사랑에 관한 얘기를 하기위해서이다. 거추장스러운 서론은 다 빼버리고 뚱뚱한 돼지와 비쩍 마른 멸치가 가진 상반된 관념에서 추출된 사랑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뚱뚱하고 게으름의 대명사로 유명세를 떨치는 돼지. 돼지로서는 참 억울한 일이다. 좀 더 많은 고기를 먹어보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끼니때마다 주는 사료를 먹는 돼지는 좁은 우리에 갇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는데 어찌 게을러지지 않고, 살이 찌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생존에 대한 걱정 없이 피와 살을 축적해온 돼지는 도살장에 끌려가기 전까지 행복한 꿈만 꾸고 있다.
그렇다면 멸치는 어떠한가? 멸치는 뜻하지 않는 죽음의 순간 전까지는 자유롭다. 넓은 바다에서 작은 몸을 맘껏 움직이며, 포식자를 피해 어떻게 오늘을 살아나갈까라는 걱정을 조금은 해야겠지만 멸치는 억지로 만들어진 또는 조장된 관념을 짊어지고 살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돼지와 멸치의 사랑에 대해 말해보자. 돼지는 그다지 맛도 없을 것 같은 사료를 마구 먹어대며,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신의 살을 찌운다. 어느덧 살이 통통히 오르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며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자신의 운명을 비관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곳에서 온 몸이 난자당할 때 처절한 비명소리를 지른 후 맛 좋게 잘려진 제 고기를 누군가에게 내 놓는다. 그 고기를 먹는 누군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잘근잘근 씹어 넘긴 후 자신의 살을 찌우는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모습은 마치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과 같은 어딘가 모르는 폭력적인 사랑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멸치는 어떠한가? 한가롭지야 않겠지만 제 맘대로 바다를 헤엄치던 멸치는 뭍으로 나와 그들의 사랑을 실현한다. 멸치국물을 우려내는 과정을 보면 멸치의 사랑이 얼마나 헌신적인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끓는 물 속에 통째로 몸을 내던져 그 안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고 키스를 하며, -이 모양새는 제의적이기까지 하다.-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양분까지 아낌없이 내어준다. 모든 것을 다 소진한 뒤에 남는 것은 누렇고 진한 육수이다. 이 육수를 먹으며 속까지 다 시원하다는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을 보며 멸치는 흐뭇해 할 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눈물나는 아가페(agap)다. 이 두 가지 존재가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은 급격한 속도로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인다. 소실점에서 상반된 사랑의 결합으로 탄생한 것이 정체모를 핑크색 합성동물이다.
입맛을 돋궈주는 핑크색으로 억지로 칠해진 머리 없는 동물들은 너무나 슬프다. 머리도 잘리고 얼떨결에 핑크색까지 뒤집어쓰고 게다가 몸은 벽에 딱 붙어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는데다 중력을 이겨내느라 허리까지 아프다. 타인의 비뚤어진 애정으로 -아니면 자신의 비뚤어진 사랑일지도…- 잔뜩 상처받은 채 머리도 없이 헤매는 불쌍한 동물들에게 애정어린 목소리로 골수까지 다 빼준 멸치가 말을 건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도 네 머리가 되어줄게’ 라고. 정말 위로가 될까? 위로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 기형적이다. 어쨌든 이들은 멸치 대가리를 떡하니 달고서 말없이 벽에 붙어있다.
어떤 식으로든 아름답게만 포장되는 사랑,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는 사랑의 경험. 전혀 일반화할 수 없는 수많은 개별적인 사랑의 방식들은 그 대상을 어떤 모습으로 변형시킬지 전혀 알 수가 없고, 자신 또한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어떤 관계 속에서 결국 남아버리는 사랑 아니면 억지로 만들어낸 찌꺼기처럼 남은 사랑이 과연 아름다음으로만 비춰지는 걸까?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상황이 어쩌면 색을 억지로 강요하고 모습마저 기형적으로 변형시킬지도 모르고 그것이 놓여야하는 공간마저 왜곡시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기형적으로 바뀐 멸치핑크합성동물을 보고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아트스페이스 휴 기획팀

- 전시기간 : 4월 15일(금) ~ 4월 27일(수)
- Open - pm: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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