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 OR DIE 멈추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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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영역을 넘나들고 새로운 형식 만들기

오늘날 영화와 미술 그리고 웹툰, 애니메이션 같은 만화를 포함한 대중문화의 융합은 현실이다.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또는 싱글채널비디오 등 전형적인 예술분야에서의 실험과 대중문화 또는 문화산업에서의 실험은 오버랩되며 같은 것이 되었다. (<멈추면 죽는다> 첫 전시 서문 중)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밝다. 매우 밝다. 그러나 산업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은 밝을지 몰라도, 예술형식 또는 시각예술의 한 형식으로 애니메이션은 여타 예술형식만큼이나 불안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매커니즘을 벗어나는 어떠한 활동도 밝은 미래를 약속 할 수 없다. 오직 자본과 시장과 대중의 소비기호에 부합하는 것만이 안전한 미래를 약속받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거의 모든 종류의 애니메이션이 유망한 문화산업으로 환원되면서부터이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경이로운 감각에 몰입할 수 있는 길이 점점 관리되는 세계에서 독립 애니메이터들의 활동은 점점 더 그 의미가 커졌다.

그러므로 젊은 예술가가 새로운 창작으로서의 예술형식에 종사하기 위해서 투잡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생산과 소비활동 이외의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이중생활의 영위야 말로 오늘날 예술종사자들의 숙명이 되었다. 뽀로로, 꼬마버스타요와 같이 안정적으로 소비시장을 갖고 있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사실 산업으로서의 애니메이션과 예술로서의 애니메이션이 행복하게 공존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예술이냐 아니냐를 떠나 돈이 되느냐 마느냐하는 생존을 위한 애니메이터의 숙명이다. 따라서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대안적인 플랫폼이 필요한 것이다.

<멈추면 죽는다>의 실험 애니메이션들은 매우 신선하고 인상적이다. 전형적인 드라마구조를 갖는 애니메이션부터 전통적인 이야기구조를 해체하거나 매우 주관적이며 허무맹랑할 정도의 환타지, 표현적인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상의 잔치가 펼쳐진다.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계의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 잡은 비디오아트, 영상설치 등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대담한 아이디어와 실험성이 돋보인다. 창의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의 애니메이터들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고 의미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이들의 왕성한 창작력을 지속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지원, 협력이 확대되어야 한다.

아무리 짧은 애니메이션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정지 이미지들이 일련의 방향으로 운동하도록 연속하는 이미지들의 집합체이다. 개별 이미지들은 수많은 종류의 궤적을 형성하며 살아있는 이미지의 운동을 만들어 낸다. 숨 쉬는 이미지 운동의 창조는 아주 하찮고 무의미할지라도 세계의 어떤 부분을 재현하거나 세계의 어떤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다. 거기에 매우 고립적이며 주관적인 독립애니메이션들은 일상에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순간에 달라붙는 이미지들을 재현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운동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운동이기에 본래 객관과 주관, 기술과 환영이 화학적으로 융합한 결과이다. 그 운동 이미지들이 개인의 자아를 활성화 하거나 사회적 관계의 의미를 고양시키는 등 다양한 의미의 층을 넘나들기 마련이다. 단순한 선(line)조차도 수많은 레이어로 중첩되고 진동하며 순식간에 마술적 환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숨 쉬며 생동하는 이미지는 아무리 단순하다 할지라도 창작자의 창작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세계와 결합하는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너무도 생생한 대상의 재현은 역설적으로 대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부여한 새로운 감각과 의미로 변화된 전혀 새로운 정신적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산업화된 애니메이션이 흔히 상투성에 기대는 것과 달리 독립 애니메이터는 그러한 목적과 이해와는 상관없이 비합리적이며 부질없는 비전에 매달린다. 그러나 어쩌면 비루하고 부질없는 쓸모없는 행위들이 인륜성에 기초한 보편적 가치를 상실해가는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가는 세속에서 어떤 다른 출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예술이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와 소재, 세상살이의 무수한 문제꺼리를 다룰 수 있다.

그러한 창작과정을 통해 팀버튼이나 이말년의 경우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기호와 부합해서 대중의 전폭적 지원을 받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관과 같은 공적 플랫폼의 관심과 지원을 받기도 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현대미술과 개념미술이 구별할 수 없이 융합하는 시절이다. 더욱이 어떤 형태로든 오늘날 본격적인 순수예술활동과 대중문화로서의 창작활동의 경계가 사라지고 또 적극적 융합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독립 애니메이터들이 자기 고유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떤 세속적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모험이고 실험이며, 비관적인 현실의 중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확장하고 열어놓는 행위이다.

- 아트스페이스 휴 운영위원장 김노암